추미애 법무부장관 아들의 군복무 시절 특혜 휴가 의혹,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관련 검찰 기소, 부동산 논란을 빚은 김홍걸 의원의 민주당 제명 등으로 가뜩이나 정부·여당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주요 항공사들의 인수합병(M&A)마저 줄줄이 무산돼 여권이 긴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직 의원은 대량해고 사태에 직면한 이스타항공의 대주주라는 점에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금호산업과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간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 무산에 따른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달 열릴 국토교통위와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이 문제가 집중거론될 전망이다. (CNB=도기천 기자)
아시아나 빅딜 주도한 이동걸 회장 도마 위
이상직 의원은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책임론
잇단 악재에 與 긴장…野, 국감 총공세 시동
국회는 추석 연휴 직후인 10월 7일부터 26일까지 3주 일정으로 국감을 진행한다. 항공업계의 국감 최대 이슈는 이스타항공 대량해고 사태, 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 책임공방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안들은 하나같이 여권 입장에서는 상당한 악재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국책은행인 산은이 주도했다가 실패했고, 이스타항공 사태는 ‘이상직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의 경우, 이스타항공의 창업주이자 대주주라는 점에서 대량해고와 경영부실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애경그룹은 제주항공을 통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려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이 위기에 처하자 인수를 포기했다. 이로인해 이스타항공 605명의 노동자가 지난 7일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고 이미 그 전의 희망퇴직, 권고사직까지 합하면 회사를 떠난 임직원이 1000명이 넘는다
노조는 이 의원이 사익에만 급급해 직원들을 무더기 해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는 이 의원이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회사 주식을 자녀에게 편법증여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이 의원을 당 윤리감찰단에 회부했으며, 국민의힘, 정의당 등 야당은 이 의원을 국정감사 증인대에 세워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국적항공사 잇단 매각 결렬 ‘후폭풍’
아시아나항공과 관련해서는 이동걸 산은 회장의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항공업 사상 최대 인수합병으로 꼽힌다. 작년 12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모(母)회사인 금호산업은 아시아나 지분 30.77%를 ‘HDC현대산업개발(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에 넘겼다. 전체 거래금액은 2조5000억원에 이르며 현산 측은 이중 10%인 2500억원을 계약금으로 지불했다.
하지만 ‘빅딜’은 난타전 양상으로 치닫게 된다. 현산은 “인수 계약의 근간이 되는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재표에 중대한 하자가 발견됐다”며 재실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 대표격인 산은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현산은 잔금 납부를 거부했고 결국 인수는 없던 일이 됐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다. 지나치게 금호 입장만 대변하다가 백지화에 이르게 됐다는 것.
이런 정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재계와 현산 측의 말을 종합하면, 이 회장은 정몽규 현산 회장에게 1대1 비공개 회동을 제안해 지난달 26일 만남이 성사됐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기존 인수조건(계약서)의 조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향후 폭넓은 논의를 전개하기로 합의했다. 또 언론 대응은 어느 한쪽이 아닌 서로 조율해서 하기로 했다.
하지만 회동 당일 오후부터 ‘HDC현산 요구 최대한 수용, 산은 아시아나 1조 깎아주나’, ‘산은, 아시아나 인수가격 1조 깎아주겠다’ 등의 기사가 쏟아졌다. 현산 측은 이는 사실과 다를 뿐더러 산은이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회장 연임되자 즉각 계약해지
또 현산 측은 지난 2일 산은에 공문을 띄워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며칠 뒤인 11일 금호산업으로부터 계약 해제를 통보받았다. 산은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매각 불발을 공표했으며, 정부는 이날 오후 산업경쟁력 강화 장관 회의를 열어 매각 무산에 따른 아시아나 경영정상화 방안을 논의했다.
금호가 채권단 동의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게 불가능한 구조인데다, 산은이 기다렸다는듯 후속조치에 나섰다는 점에서 사실상 산은이 딜을 깨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 회장이 정 회장에게 양자 담판을 요청한 것 또한 자신의 연임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은 금호산업이 현산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하기 하루 전인 지난 10일 연임이 확정됐다. 산은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회장은 연임 여부가 회자되고 있던 지난달 초 현산 측에 담판을 제안, 같은달 26일 정 회장과 회동한다. 당시 회동은 이미 금호산업이 재실사를 완강하게 거부한 상태였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연임 결정을 앞두고 보란듯이 애쓰는 모습을 부각시킨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빅딜 깬 속내 따로 있다?
현산의 거듭된 인수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산은이 일방적인 행동에 나선 이유는 아직 확실치 않다. 산은은 계약해지 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
다만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현산의 재실사 요구가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현산 측은 “본 계약을 더이상 진행할 수 없는 차원의 중대한 변동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회계에 대한 외부감사에서 감사의견 ‘부적정’ 판정을 받은 바 있다. ‘부적정’은 재무제표가 왜곡돼 감사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내놓는 의견이다. 여기에다 최근까지 대규모 차입, CB 발행 및 부실계열사 지원 등이 현산의 동의없이 진행됐다.
현산의 재실사 요구는 이런 부분을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산은 입장에서는 재실사에 들어가면 계약이 무산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만약 재실사 결과로 인해 무산될 경우, 계약금을 돌려줘야 함은 물론 위약금까지 물게 되고 산은의 책임론은 더 커지게 된다.
따라서 산은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선제적으로 ‘계약 해지’라는 카드를 던졌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산은의 이런 태도는 금호산업을 감싸는 모양새가 됐다. 공적자금을 운용하는 국책은행이 중립성을 잃었다는 얘기다. 현산은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며 벼르고 있다.
결정적 순간마다 박삼구 손 들어줘
산은의 이런 태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자 2010년 1월부터 산은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었다. 4년 뒤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상황이 호전됐다며 자율협약 졸업을 선언한다.
이후 산은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 금호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인 금호산업을 인수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을 졸업한지 불과 5년 만에 매물로 나왔다.
앞으로도 산은의 금호그룹 지원은 계속될 전망이다. 산은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에 2조4000억원(운영자금 대출 1조9200억원, 영구전환사채 인수 4800억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아시아나 내부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자는 CNB에 “박삼구 회장 일가의 부실경영으로 아시아나항공이 이 지경이 됐음에도 산은이 다시한번 오너일가에게 기회를 준 셈”이라며 “투명한 실사를 통해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져야할 산은이 공적자금을 동원해 급한 불을 끄는데만 급급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시아나항공과 이스타항공 사태는 항공업 문제를 넘어 정치 이슈로 불거지고 있다. 정의당의 한 당직자는 CNB에 “재벌개혁과 일자리창출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모토인데, 아시아나·이스타항공 사태를 보면 이런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이번 국감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동원해 재벌을 지원한 산은과 수많은 노동자를 정리해고한 이 의원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