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이미 게임 끝인데… 왜 미련을 못 버리시는지”(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최고위원)
“의원님한테는 게임이겠지만 전 국민에게는 생존의 문제”(이재명 경기도지사)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고용취약계층에게만 2차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결론 내렸지만, 논의 과정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1차 지급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지급대상을 놓고 숱한 논란과 진통이 뒤따랐다는 점에서다.
1차 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그렇다치자.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가채무 부담을 이유로 추경 편성에 반대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제적으로 좀 더 견딜 수 있는 분들이 양보해달라”며 소득 하위 70%가구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4.15총선을 코앞에 둔 민주당 지도부는 판을 더 키웠다. ‘전국민 지급’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워 압승했고, 결국 정부·지자체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줬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줄곧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었다. 당시에는 용어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재난기본소득’과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2개의 단어가 혼재돼 혼란을 줬다.
그런데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일단 그간 있었던 여권 핵심인사들 발언을 보자.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100번 지급해도 선진국 평균 국가부채 비율보다 낮다”(이재명 경기지사)
“철없고 무책임하다. 잘못하면 국민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는 발언”(홍남기 경제부총리, 이 지사 발언 반박)
“부총리의 생각이라기엔 고뇌나 궁휼 의지가 없다”(이상민 의원, 홍 부총리 발언 비판)
“코로나로 고통을 받지 않은 국민은 없지만, 재난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이낙연 민주당 대표, 선별지급 주장)
“소득 50%, 70% 나누는 행정 통계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빠른 정책 시행을 위해서는 균등 지급이 맞다”(김부겸 전 의원)
“소득 하위 50%에게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 재정당국의 부담이 다소 줄어들 것”(진성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논란의 큰 줄기는 ‘전(全)국민 지급’이냐 ‘선별지급’이냐다. 이를 두고 여권 내 치고박는 모습은 점입가경이었다. 특히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이재명 두 사람이 정면충돌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세간에서는 ‘대권 전초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논란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방역이 우선”이라며 한발 물러서 있던 정부는 돌연 ‘핀셋 지원’을 선포한다. 자영업자·소상공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이들만을 ‘콕 집어’ 지원한다는 것. 형식적으로는 ‘당·정·청 합의’ 모양을 갖춘 안이었지만 ‘문심(文心)’이 작용했음은 말해 무엇하랴.
핀셋 지원은 민주당 지도부와 다소 온도차가 있지만 선별지급이라는 큰 틀에서 일치한다. 지역의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살려야 한다는 일부 지자체의 바람도 일정부분 반영된듯하다.
더이상 희망고문 하지 마라
하지만 월급쟁이들이 지급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점에서 논란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봉급생활자가 영세자영업자보다 그나마 나은 처지인 것은 맞지만 무급휴직, 급여삭감 등 겪고 있는 고통 또한 작지 않기 때문. 결국 이들의 유리지갑을 털어 자영업자를 돕는 셈이 됐다.
이재명 지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젊은 남편이 너무 살기 힘들어 아내와 함께 결혼반지를 팔고 돌아와 얼싸안고 같이 울었다는 글을 봤다”며 “그러나 이 부부는 이번 지원 대상이 못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알바 못구한 대학생도 힘들다”며 정부 결정을 비판했다.
이처럼 재난지원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이 갈피를 못잡고 있다. 이대로라면 3차, 4차 재난지원금 때도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이다.
시행착오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 우선 재난지원금의 사용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바닥경기 활성화가 먼저냐, 피해구제가 우선이냐부터 정하자는 것이다.
내수를 살리는게 목적이라면 전국민에게 지역화폐로 지급하는게 맞다. 앞서 이 방식으로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 덕분에 식당, 가게, 쇼핑몰 등 소비경제가 반짝 살아난 예가 있다.
반면 ‘긴급한 피해구제’가 재난지원금의 지급목적이라면 피해를 많이 본 국민부터 챙기는게 당연하다. 태풍 피해 지원과 같은 성격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피해액을 어떻게 산출할지에 대한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은 재난지원금의 성격과 목적부터 명확히 규정해주기 바란다. 필요하다면 법 개정을 서두를 일이다.
기업이 줄도산하고 식당이 폐업하고 직장인들은 급여를 반납하고 있다. 몇십만원 받는게 이 힘든 상황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지만 국가가 나와 이웃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는 시대다. 정치권은 이를 희망고문으로 만들지 마라.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