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
공정성(형평성) 이론은 자신의 노력에 따른 보상을 동일한 환경에 있는 타인과 비교해 행동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공정하다고 판단되면 만족도가 올라가고, 그렇지 못하다면 불만이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조국 구속’과 ‘조국 수호’로 대한민국을 두 동강 냈던 이른바 ‘조국 사태’는 대다수 국민에게 “대한민국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조국을 지지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 모두 ‘불공정’을 화두로 내세운 희한한 사건이다. 그래서 조국 사태가 가진 함의는 한국사회의 속살이 밖으로 드러난 계기가 됐다.
우선 ‘조국 구속’ 측은 청년들의 좌절감을 내세웠다.
조국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역임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2인자로 부상한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여러 의혹 중에서도, 특히 청년세대가 느낀 좌절감은 입시와 관련된 것들이다.
검찰은 조국 전 장관의 딸 조민씨가 입시 과정에서 제출한 모든 증명서가 위조 됐거나 편법·불법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입시제도가 정시와 수시로 나눠져 있는 현 상황에서 대학에 수시 지원을 하려면 스펙(경력)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생활기록부와 자기소개서에 스펙 한 줄을 더 넣기 위해 고등학교 시절 내내 동아리 활동과 봉사활동을 하고 각종 대회에 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검찰이 주장하는 ‘스펙 조작’이나 ‘스펙 품앗이(교수들끼리 서로의 자식 돌봐주기)’는 당연히 청년들의 공분을 샀다.
“기승전-조국, 마이 뭇다”
반면 ‘조국 수호’ 측은 문재인 정부에게 타격을 가하려는 적폐세력들이 검찰을 앞세워 조국 일가를 희생양 삼은 희대의 ‘불공정’ 사건으로 해석한다.
입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도 않은 표창장과 논문 등재 등을 꼬투리로 잡아 마치 엄청난 입시부정이 행해진 것처럼 호도하고, 사모펀드에 단순투자 한 것을 불법금융으로 몰아 붙여 ‘나쁜 그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 수사와 재판과정은 공정하지 못했다. 조국 딸이 받았다는 표창장 원본 한 장을 찾기 위해 검찰 수사관 여러 명이 무려 11시간 자택 압수수색을 벌였으며, 서울대·부산대·고려대와 사모펀드 사무실, 웅동학원 등 수십 곳을 동시다발 또는 수차례에 걸쳐 먼지 털어내듯 압수수색했다.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수사 내용이 흘러들어간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언론은 여기에 살을 붙여 조국 일가 망신주기에 나섰다.
조국 딸이 논문을 직접 썼나 안썼나, 연구과정 참여했나 안했나 이런 걸 갖고 병중에 있는 조국 부인 정경심 교수를 몇 달이나 가둬두고 수차례 공판을 벌였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성역없는 수사를 외쳤다. 성역 없이 수사하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피의자가 설령 성역에 있다 해서 인권이 말살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유시민 작가는 “악당들이 주인공을 제압 못할 때 가족을 인질로 잡는, 저질 스릴러”라고 표현했다.
조국 사태, 성숙의 과정
이처럼 조국 사건은 두 개의 ‘불공정’으로 나뉘었다.
많은 이들이 ‘평등, 공정, 정의’를 언급하지만 이 가치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의가 부족하다.
조국 사태를 상류층의 ‘스펙 품앗이’ 사건으로 규정할지, 사법권력에 희생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봐야할지 우리사회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다. 지금도 양 진영 모두 굵직한 사안마다 상관없는 조국을 끼워 넣어 아전인수 격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다. 오죽하면 조국 스스로 SNS에 “‘기승전-조국’ 장사, 마이 뭇다”라고 썼을까.
하지만 이 진통이 시민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조국 재판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의 문제를 떠나, 이미 그 과정 속에서 지식인들의 성찰과 논쟁이 있었고 이것이 토양이 되어 민주주의 가치는 또 하나의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도덕성, 약자 등 진보의 가치를 다시한번 돌아보게 되었고, 사법개혁이 왜 필요한지 각인하는 계기도 됐다.
그래서 조국 사태는 결론보다 과정이, 표면보다 본질이 더 중요하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에 더 건강해지듯 그렇게 사회는 한발 더 진보하고 있다.
(CNB뉴스=도기천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