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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삼성·현대차·SK·LG…주사위 던진 4대그룹 총수들

“새해를 터닝포인트로” 기로에 선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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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20.01.08 10:16:35

경자년 새해에도 한국경제에 드리운 그림자가 좀체 가시지 않고 있는 가운데, 주요 대기업들은 올해를 ‘터닝 포인트’로 삼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경기 바닥론’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에 맞춰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겠다는 것. 이에 CNB는 4대그룹 총수들의 신년 행보를 통해 재계의 생존전략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년 행사 없애고 현장 소통
과감한 행보로 ‘혁신’ 메시지
글로벌 생존변화 더 빨라질듯


“지난해 수출이 전년보다 10.3% 내려갔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경제가 잘되고 있다고 하니 경제인 여러분 속이 얼마나 타겠나.”(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맞아요” “브라보”(신년인사회 참석한 기업인들)

지난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20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의 한 장면이다. 보통 무거운 분위기인 재계 행사에서 야당 정치인의 발언에 호응이 쏟아진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국경제의 처한 현실이 녹록지않음을 방증한다.

경제계 최대 행사로 꼽히는 이날 행사는 기업인, 정·관계 인사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 기업인 중에는 재계 맏형격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비롯,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장동현 SK 사장, 권영수 LG 부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회장,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등이 눈에 띄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일 경기 화성사업장 반도체연구소를 찾아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제공)
 

이재용號 “흔들림 없이 갈길 간다”

이같은 상황은 주요그룹 총수들의 신년 행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무식을 아예 없애거나 동영상 메시지로 대체하는가 하면, 새해 첫날 생산현장으로 출근한 총수도 있었다. 이는 형식보다 실리를 추구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가장 파격적인 모습을 보인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새해 첫 업무일인 2일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 공정기술을 보고 받고, DS부문 사장단과 함께 차세대 반도체 전략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자”고 강조했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 1위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한번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전자는 작년 4월 오는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글로벌 1위로 올라서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이 별도의 신년사를 내지 않고 삼성전자 시무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날 행보는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부회장의 이런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작년에는 재계 총수들 중 가장 열심히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다. 신년 간담회부터 시작해 4월 문 대통령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방문, 6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 방한 때 동석, 10월 문 대통령의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공장 방문, 11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환영 만찬 참여 등 여러 행사에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활발한 현장 경영을 통해 투자와 고용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 부회장이 작년 10월 삼성 아산공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우디 왕세자 방한 때는 이 부회장이 5대그룹 총수들과 왕세자 간의 승지원 회동을 주선해 주목받기도 했다. 승지원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가 살던 집을 개조한 곳으로, 여기서 총수들의 회동이 있은 것은 2010년 전경련 회장단 만찬 이후 9년 만이었다.

또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 주요 정계 인사들과도 만남을 가졌고 그때마다 ‘3년간 180조원 투자와 4만명 채용’을 강조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의 이런 모습을 미중 무역분쟁으로 악화된 글로벌 환경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고 있다. 삼성전자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영업이익이 전체 수익의 7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반도체 의존률이 높아 미중 무역분쟁이 최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더구나 회사가 맞이한 상황은 ‘초유의 사태’라고 일컬어질 만큼 엄중하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뇌물 혐의 등으로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판, 노조 와해 혐의 재판도 한꺼번에 진행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세계경기 침체 등 대내외 불확실성에다가 수년째 이어지는 재판 부담으로 삼성은 이중고를 치르고 있다”며 “이 부회장의 최근 행보는 여러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투자·고용 약속을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CES 2020’ 개막 하루 전인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현대차 미디어 행사’에서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제공)
 

정의선號, 키워드는 ‘도전적 실행’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에 오른 후 처음으로 신년회를 양재동 본사에서 주재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올해를 ‘터닝 포인트’로 삼겠다고 공표했다. 모바일로 생중계된 이날 행사에서 정 부회장은 단상을 치우고 프레젠테이션 방식으로 연설했다.

그는 임직원들을 향해 “여러분은 거대한 조직의 단순한 일원이 아니라 한분 한분 모두가 ‘스타트업의 창업가’와 같은 마인드로 창의적 사고와 도전적 실행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이 ‘도전적 실행’을 강조할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은 호실적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대부분 대기업들의 실적이 내리막을 걷는 와중에 현대차만 나홀로 선방했다. 현대차그룹은 원화 약세(달러 강세) 및 신차 효과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10대그룹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여기에다 정부는 수소차를 오는 2040년 620만대 수준으로 확대하고, 14개에 불과한 국내 수소충전소도 1200개로 늘리는 ‘수소경제 로드맵’을 추진 중인데, 현대차그룹은 이에 부응해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들여 수소차 생산 능력을 연50만대로 늘리고 5만1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FCEV(수소차) 비전 2030’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총투자 규모를 20조원으로 확대했으며 향후 5년간 총100조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여기에다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운전자가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면서 주행하는 자율주행차량의 출시가 가능해질 전망이라 한껏 고무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자율주행차의 상용화를 위해 ‘부분 자율주행차’(레벨3) 안전기준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레벨3 안전기준이 도입되면 지정된 작동영역 안에서는 자율차의 책임 아래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도 운전이 가능하다.

‘날으는 자동차’로 불리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실현에도 적극적이다. UAM는 ‘개인용 비행체’(PAV· Private Air Vehicle)를 기반으로 하늘을 새로운 이동 통로로 이용하는 서비스다. 정 부회장은 지난 6일(현지시간) 세계최대 가전쇼인 ‘CES 2020’ 개막에 맞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현대차 미디어 행사’에서 혁신적 미래 모빌리티 비전을 직접 공개하며, 2028년 상용화를 공언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종로구 서린동 SK빌딩에서 ‘보이는 라디오’ 형식의 99차 행복토크를 하고 있다. (사진=SK그룹 제공)
 

최태원號, 혁신의 동력은 ‘행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별도의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는 파격적 방식의 신년회를 열며 새해 포문을 열었다. SK 구성원 뿐 아니라 SK서린빌딩 인근 식당 종사자, 청년 구직자, 워킹맘 등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했다.

이는 최 회장이 자신의 평소 소신인 ‘사회적 가치’를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SK가 지향하는 행복과 ‘딥 체인지’를 고객, 사회와 함께 만들고 이루겠다는 ‘공유경제’에 경영의 뿌리를 두고 있다.

최 회장은 사내에서부터 이를 실천하고 있다. 작년 1월 신년회 때 “올해 안에 임직원들과 100차례 만나겠다”고 공언한 뒤 실제로 1년간 100회에 걸쳐 1만4000여명의 직원들을 만났다. 10여명의 소규모 만남부터 100여명 이상의 행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임직원을 만나 사전 각본 없이 격의 없고 솔직한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주제는 변함없이 ‘행복’이었다.

이번 신년회의 주제 또한 ‘행복을 통한 가치창출’이었다는 점에서, 최 회장은 새해에도 행복토크를 이어가며 사회적 경영을 전파하는데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 관계자는 CNB에 “최 회장이 설파해 전세계 기업인들이 주목하고 있는 SK의 ‘사회적 가치 측정 방법론’과 ‘사회성과 인센티브 시스템’을 올해는 좀 더 구체화·체계화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 2일 디지털 영상 ‘LG 2020 새해 편지’를 전 세계 임직원들에게 보냈다. 사진은 영상 캡처. (사진=LG그룹 제공)
 

구광모號, 4차 산업혁명 ‘올인’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오프라인 시무식을 없애고 신년 인사를 담은 동영상을 전 세계 25만여명의 임직원들에게 이메일 형태로 보내는 ‘디지털 시무식’을 열었다. 이는 LG그룹 창사 이래 처음이다.

40세에 총수자리에 올라 올해 42세인 구 회장의 슬로건은 ‘디지털’과 ‘변화’로 요약된다. 그는 미국 로체스터 공대에서 IT(정보기술) 분야를 전공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꼽히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5G(5세대 이동통신), 빅데이터, 로봇 분야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구 회장은 디지털 혁신의 시작은 기존 틀을 깨는 데서부터 비롯된다고 믿고 있다. 임직원들에게 ‘회장’ 대신 ‘대표’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전 임직원이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으로 근무하는 문화를 정착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새해 첫날을 ‘디지털’ 형태로 시작한 것은 변화에 한층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더 나아가 변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실리추구에 있으며, 실리를 통해 성과를 내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LG그룹은 LG전자·LG화학을 필두로 자동차 전장 사업을 강화하고 있으며, LG유플러스는 방송과 통신의 융·복합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CJ헬로를 인수해 LG헬로비전을 최근 출범시킨 상태다. 구 회장 입장에서는 주사위가 던져진 만큼 올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 한다.

이처럼 4대그룹 총수들은 과거에 볼 수 없던 과감한 신년 행보를 통해 새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는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근본 틀을 바꾸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진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훈화·덕담 형태의 연설로 신년회를 갖던 모습은 이제 옛일이 됐다”며 “4대그룹 모두 과감한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데다, 글로벌 산업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새해에는 재계 전반에 있어 혁신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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