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는 온 나라가 사모펀드 이슈로 들썩였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지명에서 비롯된 ‘조국 사태’와 일부 은행의 불완전 판매로 논란이 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는 둘 다 ‘사모펀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금융권에서 업종별로 희비가 갈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모펀드에 웃고 있는 증권업계와, 울고 있는 은행권 이야기다. (CNB=도기천 기자)
온 나라 뒤흔든 조국·DLF發 사모펀드
‘투자는 은행보다 증권사’ 인식 심어줘
금감원 은행규제로 내년에도 반사이익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이른다. 투자신탁업법에서는 100인 이하의 투자자, 증권투자회사법에서는 49인 이하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펀드를 말한다. 운용에 제한이 없는 만큼 투자와 설계가 자유롭다.
이에 대비되는 개념은 공모펀드(Public Offering Fund)다. 일반 투자자(불특정 다수)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펀드다.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투자자 모집이나 운용에 대한 규제가 비교적 엄격하다.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종목의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할 수 없다.
조국 전 장관 일가가 투자한 금융상품이나 최근 논란이 커진 은행권 DLF(파생결합펀드)는 모두 사모펀드에 해당된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온 이 사건들은 결과적으로 증권업계에 이익을 안겨줬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의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7월말 313조원에서 8월말 318조원, 9월말 322조원으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보험사도 사모펀드 판매 잔액이 7월말 2조9790억원에서 9월말 3조1838억원으로 늘었다. 10대 증권사(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삼성증권, 메리츠종금증권, 하나금융투자, 신한금융투자, 키움증권, 대신증권) 모두 사모펀드 운용 수익이 주수입원 중 하나다.
‘사모펀드’ 저절로 널리 홍보돼
이는 은행권 DLF의 부실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해석된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이 주로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형 DLF에서 4182억원(9월말 기준)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달 들어 수익률이 크게 회복되긴 했지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초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은행권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이 때문에 은행의 사모펀드 판매는 7월 이후 감소세가 뚜렷했다. 8월 1.4% 줄어든데 이어 9월에는 전월보다 2.9% 줄었다.
‘조국 사태’로 사모펀드의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점도 실적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조국 사태는 청와대가 조국 전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 8월9일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논란을 이른다. 조 전 장관 일가를 둘러싼 여러 의혹 중 대표적인 것이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된 사안이다. 검찰이 최근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사모펀드 투자사인 2차전지업체 더블유에프엠(WFM)의 미공개 정보를 입수해 주식을 차명으로 매입해 이득을 봤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 사건이 정치·사회적으로 크게 불거졌고 관련기사만 수십만 건이 쏟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사모펀드를 홍보하는 효과를 낳았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CNB에 “8월 이후 사모펀드 투자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실제 투자로 연결된 경우도 많다”며 “비슷한 시기에 은행들의 DLF 불완전판매(부당판매행위)까지 겹쳐져 반사이익을 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 표정관리 언제까지?
앞으로도 이런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소위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제한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DLF 사태를 계기로 마련한 투자자 보호 개선방안에 따르면, 은행은 향후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고난도 사모펀드는 판매할 수 없다. 주식, 채권,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해당되지 않고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가 대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원금 비보장형 파생결합증권 가운데 원금의 20%를 넘는 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 규모는 74조4천억원에 이른다.
아예 예·적금과 펀드 창구를 물리적으로 떼놓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는 펀드 판매와 예금 거래를 같은 창구에서 진행해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예금 거래를 하러 간 고객에게 펀드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앞으로는 두 상품의 창구를 아예 갈라놓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현재 이 방안을 놓고 은행들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 스스로도 대책을 내놓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최근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고객에게 투자원금을 되돌려주는 ‘투자상품 리콜제(책임판매제도)’를 업계 처음으로 도입했다. 우리은행은 고객이 상품에 투자하기 전 신중하게 결정토록 하는 ‘투자숙려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은행권의 이런 흐름으로 인해 증권사들은 앞으로도 반사이익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CNB에 “조국 사태와 DLF 사태를 거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는 ‘역시 은행보다는 증권사’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며 “은행과 증권사 간의 사모펀드 판매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