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들의 큰 관심사인 ‘주류 종량세’가 올해 안에 도입될 예정인 가운데, 오비맥주·하이트진로 등 주류기업들의 셈법이 복잡하다. 외형적으로는 수입맥주의 세금 부담이 커지게 돼 상대적으로 국내기업이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생맥주와 소주, 수제맥주, 국내생산 외국맥주 등이 뒤엉켜 계산이 단순치 않다. CNB가 저마다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주류기업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세금 줄겠지만…시장재편·가격인하 변수
오비, ‘국내산 외국맥주’ 늘려 세금 대응
하이트·롯데, 소주시장 불똥 맞을라 고심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맥주 종량세 도입 논의는 정부가 세수와 시장가격 불안을 우려해 세법개정안에서 제외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맥주, 소주 등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시 도입을 검토 하겠다”고 밝혀 ‘2라운드’로 접어든 상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주류 종량세 전환의 후속 절차를 합의했으며, 기획재정부는 오는 3월까지 연구용역 및 업계 협의를 거친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과 국회 논의가 전개됐다는 점에서 이르면 상반기 중에 안이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종량세가 추진되는 이유는 세금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맥주 과세체계는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국산맥주는 국내 제조원가에 국내의 이윤·판매관리비를 더한 출고가를 기준으로, 수입맥주는 관세를 포함한 수입신고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고 있다.
문제는 수입맥주의 경우 국산맥주에 포함된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게 매겨진다는 점이다.
1991년 7월 이전까지는 수입 주류도 국산과 마찬가지로 10%에 해당하는 통산이윤상당액을 더한 금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매겼지만, 통상 마찰을 이유로 이윤은 과표에서 빠지게 됐다.
이러다보니 세금 차별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한국조세재정연구원과 국세청은 맥주의 과세체계를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안을 기획재정부에 건의한 상태다.
종량세는 알코올 함량이나 술의 부피·용량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으로 선진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과세체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0개국은 모든 주류를 종량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종가세 방식만을 택한 국가는 칠레·멕시코 등 3개국뿐이다.
더구나 수입맥주 점유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이에 위기감을 느낀 국내기업들의 과세기준 개선 요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의 작년 11월 주류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국산맥주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97.2%에서 2017년 85%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수입맥주는 꾸준히 늘어 2.8%에서 15%로 증가했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CNB에 “현재 주류 과세체계는 가격을 기준으로 한 종가세 방식인데 이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데는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있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상반기 안에 매듭지으려 한다”며 “대표적인 서민 술인 소주·맥주 가격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세제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위 오비, 속내 ‘복잡’
주류 과세체계가 종량세로 전환될 경우, 기업마다 셈법이 엇갈릴 전망이다.
우선 외국맥주사들은 수입맥주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있다. 이윤과 알콜도수, 용량 등으로 과세표준을 정하게 되면 현재보다 세금이 올라가게 돼 이 부분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것.
심기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캔맥주 500mL를 기준으로 종량세를 도입할 경우 국산맥주는 평균 363원 저렴해지는 반면, 수입맥주는 89원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현재 대형마트에서 외국맥주 ‘500mL 4캔’ 묶음을 9천원~1만원에 판매하고 있는데, 세금부담이 늘게 되면 이 가격이 유지되기 힘들 수도 있다.
다만, 수입맥주 전체의 가격이 오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 캔(500mL기준) 당 4000~5000원인 프리미엄 수입맥주의 경우 부피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는 반면 2000원 안팎의 저가맥주들은 상대적으로 세금이 크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맥주사들은 기업별로 표정이 엇갈린다. 그동안 수입맥주에 비해 국내 맥주가 세금 차별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오비(OB)맥주는 사정이 좀 다르다.
오비맥주는 세계 1위 맥주기업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AB인베브)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원래 오비맥주의 대대주였는데 몇 년간 사모펀드에 오비 지분을 넘겼다가 2014년 되찾아 왔다.
AB인베브는 2008년 벨기에·브라질의 인베브 그룹과 미국의 안호이저-부시가 합병한 세계 최대 양조회사다. 버드와이저, 스텔라, 코로나, 호가든, 레페 등 유명 맥주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한다.
오비맥주는 영국 에일맥주 ‘바스’, 독일 밀맥주 ‘프란치스카너’, 미국 라거맥주 ‘버드와이저’, 룩셈부르크 ‘모젤’, 벨기에 ‘호가든’과 ‘스텔라’, 맥시코 ‘코로나’. 일본 ‘산토리 프리미엄’, 중국 ‘하얼빈’ 등 20여 종의 수입맥주를 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따라서 수입맥주의 세금이 늘게 되는 종량세가 달갑지 않다. 오비 측은 일부 인기 수입맥주들을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량세로 개정되면 해외생산보다 한국에서 생산하는 것이 세금혜택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점유율 50% 이상으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비의 대표브랜드 ‘카스(CASS)’만 따로 보면 얘기가 다르다. 카스는 외국기업이 대주주임에도 국내에서만 생산된다는 점에서 국산맥주로 분류된다. 따라서 종량세가 도입되면 세금혜택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정세현 경영컨설턴트(인하대 겸임교수)는 CNB에 “(종량세가 도입될 경우) 카스의 점유율로 볼 때 당장은 세금이익이 크겠지만, 갈수록 판이 커지고 있는 수입맥주 시장의 앞날을 생각하면 세제개편이 반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외국맥주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전략을 펼 수 있겠지만, 이 경우 ‘세금 피하기 꼼수’라는 논란과 수입맥주 마니아층 이탈을 가져올 수도 있어 고민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마다 숨죽인채 ‘주판알 튕기기’
다른 주류기업들도 오비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셈법이 단순한건 아니다.
하이트진로의 경우 지속적으로 국산브랜드를 출시해 수요층을 넓히고 있는 만큼, 국산맥주 세금 부담이 적어지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이 회사는 맥스(2006년), S(2007년), 드라이d(2010년), 퀸즈에일(2013년), 이슬톡톡(2016년), 망고링고(2016년), 필라이트(2017년) 등 매년 새로운 국산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국산맥주 ‘클라우드’에 올인하고 있는 롯데주류 또한 하이트와 비슷한 입장이다. 롯데주류는 미국 맥주인 밀러, 블루문 등을 수입해 판매하고 있고, 계열사인 롯데칠성이 지분을 보유한 롯데아사히주류와 아사히 맥주를 공동 판매하고 있지만 점유율이 미미해 클라우드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소주에도 종량세가 도입된다면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롯데주류는 ‘처음처럼’을 각각 생산·판매하고 있는데 종량세 과표기준에 알코올 도수가 포함되면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종가세에 비해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
현재 정부는 맥주에만 종량세를 적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지만, 주세 개편 논의가 확대될 경우 소주, 양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다 종량세로 인해 수제맥주 시장이 확대되면 설자리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CNB에 “세금이 줄어드는 건 당연히 환영하지만 이에 따른 가격인하, 시장 재편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 등 고심해야 할 부분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기업 주류사들은 제각각 주판알을 튕기며 세제 개편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국산 수제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이들은 소주나 수입맥주를 취급하지 않는데다 후발주자인 만큼 종량세 도입에 가장 적극적이다.
제주맥주, 플래티넘맥주 등 20여개 중소기업을 회원사로 둔 한국수제맥주협회는 국회 청원, 성명 발표 등 단체행동을 이어가며 종량세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맥주 종량세가 시행되면 연간 3631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창출되며,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주요 맥주 생산기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종량세는 주류시장의 지형을 바꿀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하고, 정부는 세수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적용범위와 과세기준을 고심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힘든 서민들은 술값이 내리기만을 고대하고 있다. 3자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다보니 개정 논의가 예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국회는 오는 4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할 계획이다.
(CNB=도기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