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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故김주혁 1주기에 부쳐…좋은 배우에서 명배우로 거듭났던 그를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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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8.10.30 09:41:24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한 장면. (사진 = 영화제작전원사)

30일은 배우 김주혁이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故 김주혁은 지난해 10월 30일, 자신 소유의 벤츠 G63 AMG 차량을 운전해 이동하다가 갑작스런 차선 이탈에 이어 도로변 아파트 계단 아래로 전복하는 사고와 함께 사망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차량 전복으로 인한 두부손상으로 밝혀졌으나 차선 이탈의 원인은 심근경색, 부정맥 등으로 인해 갑자기 몸에 마비가 왔거나 의식을 잃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착한 남자, 하지만 심심했던 배우

 

1990년대 후반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드라마 '카이스트'로 얼굴을 알린 김주혁은 2001년 스릴러 영화 '세이예스'에서 추상미와 함께 주인공 부부를 연기하며 스크린에 데뷔했다.

 

2000년대 김주혁의 대표 영화는 '싱글즈',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광식이 동생 광태',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로맨틱 코미디였다. 이 작품들에서 김주혁이 맡은 역할들은 하나같이 소심해 보여도 남에게 공감할 줄 알고 생각이 깊은, '좋은 사람' 역할이었다. 뛰어난 미남이거나 강한 카리스마를 지닌 남자 배우들만 주인공을 맡던 한국 영화 가운데서 김주혁의 존재는 특별했다. 하지만, 동시에 '한결같은 역할만 맡는다'는 한계로 보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의 김주혁(오른쪽)과 엄정화. (사진 = 시네마서비스)

그래서 그의 변신은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2010년, 춘향전을 불륜극으로 재해석한 19금 영화 '방자전'에서 주인공 방자 역을 맡아 무섭도록 단련한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303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 흥행을 이끌었다. 김주혁의 변신은 폭이 컸으나 여배우 노출의 화제성에 가려 의미 있는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는 딱히 흥행도, 좋은 평가도 받지 못하며 조금씩 대중과 유리되는가 싶었다.

 

주인공으로 출연한 MBC 사극 '허준'의 인기도 지지부진하던 2013년 말, 그는 느닷없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멤버로 출연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출연진을 고생시키고 망가뜨리는 것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1박 2일' 시즌3에. 배우의 아우라나 이미지는 내던져야만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결과적으로 김주혁이 출연했던 당시의 '1박 2일' 시즌3은 역대 1박 2일 중에서도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시즌으로 꼽히고 있다. 맏형 김주혁을 위시해 김준호, 차태현, 데프콘, 김종민, 정준영 등의 멤버는 "이 멤버, 리멤버, 포에버"라는 말을 구호로 내세우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했다. 김주혁은 본업이 무색할 만큼 허당의 본색을 드러내며 아낌없이 망가졌고, '구탱이 형'이라는 불멸의 애칭을 얻었고, 2014년 KBS 연예대상 쇼/오락부문 신인상과 이듬해 최고엔터테이너 상까지 수상했다.

 

한편, '1박 2일'을 하는 2년 동안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 '뷰티 인사이드'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특별 출연 및 우정 출연만 하는 정도로 본업인 배우에서는 다소 멀어져가는 듯 보였다. 결국 본인도 배우라는 정체성에서 지나치게 멀어지는 것을 경계하여 갑작스레 '1박 2일'에서 하차를 하기로 결정했다.

 

뜻밖의 예능이 배우를 바꾸다

 

프로그램이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그는 '1박 2일'을 촬영하는 것은 즐거웠지만, 예능이 본업은 아니라는 생각을 벗어던지지 못해 계속해서 벽을 쌓아두고 있었고, 그것이 '1박 2일'을 둘러싼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배우로서의 이미지 소모도 걱정했다.

 

'비밀은 없다'. (사진 = CJ ENM)

멤버들은 모두 아쉬워했지만 그의 묵직하고 신중한 결심에 응원하며 보내주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예능 사상 가장 촌스러운 눈물을 보이며 하차한 김주혁은 다시 영화와 드라마에 활발하게 출연하기 시작했다.

 

배우에 얼마나 목이 말랐었는지 증명하듯, 2016년에만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를 무려 네 편이나 개봉시켰다. 그리고 이 영화들에서 김주혁은 '1박 2일' 이전과는 분명 다른 색깔을 내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그는 전처럼 고정된 이미지에 묶이지도, 변신에 아등바등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내려놓은 2년의 시간이 배우 김주혁의 안에서 무언가를 바꿔놓은 것 같았다.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이경미 감독의 독특한 미스테리 스릴러 '비밀은 없다'와 홍상수 감독의 저예산 독립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었다.

 

'비밀은 없다'에서 김주혁은 과거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췄던 손예진과 다시 부부를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김종찬은 선거를 앞둔 젊은 정치가로, 한창 유세에 집중해야 할 기간에 딸의 실종 사건까지 겪으며 혼란스러워 하는 인물이었다. 당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대세로 평가받는 만큼 카리스마와 유들유들함이 적절히 섞여 있고, 실종된 딸때문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냉정하게 정치를 우선시하는 입장을 포기하지 못해 아내와 갈등하는 등, 평범한 인생에서는 결코 느끼기 힘든, 그래서 표현하기에 쉽지 않았을 복잡한 감정을 정확하게 연기해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는, 자신의 간섭과 닦달로 인해 곁을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스스로의 아집과 편견을 반성하고, 연인을 100%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하는 남자 역할을 맡았다. 어찌 보면 과거 '광식이 동생 광태'나 '아내가 결혼했다'의 소심한 남자 역할로 보일 수도 있으나, 김주혁이 연기한 영수는 이보다 훨씬 깊은 깨달음을 얻고, 비현실적일 만큼 이상적인 연인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이 역시 해석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겠으나 김주혁은 과장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영수의 감정을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있었다.

 

이 무렵 한 촬영감독은 '1박 2일' 이후 김주혁의 얼굴이 마음에 든다며 언젠가 그가 출연하는 영화의 촬영을 맡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들여다봤을 때 마음에 드는 배우의 얼굴에 관해 설명하면서, 40대 중반이 된 김주혁의 얼굴에 자연스럽게 생긴 주름살들이 멋있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특히 김주혁이 '비밀은 없다'에서 보인 연기를 두고 "자신의 주름을 이용할 줄 아는 배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제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모두 그 주름에 담을 줄 안다며, 안성기처럼 좋은 위치에서 장수할 배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공조'. (사진 = CJ ENM)

2017년 78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한 코믹 액션 영화 '공조'에서는 극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악역을 맡았다.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하는 인물을 연기한 적은 있지만,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살인과 인질극도 마다하지 않는 본격적인 악당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1박 2일'의 구탱이 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빛 까지 달라진 모습을 선보이며 호평 받았고, 제1회 서울 어워즈에서 영화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상을 수상한 뒤 3일 만에 그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빨리 진 별

 

사망 당시 김주혁은 다섯 편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었다.

 

'흥부'는 모든 촬영을 마치고 후반작업 중이었고, '독전'은 한창 촬영 중이었으나 김주혁의 출연 분량은 촬영을 마친 상태였다. '열대야'와 '짝꿍'은 아직 촬영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캐스팅이 교체됐고, 최근 개봉한 '창궐'은 촬영을 시작했으나 김주혁의 분량은 아직 촬영 전이어서 배우 김태우로 교체되었고, '창궐' 제작진은 고인을 기리는 의미에서 크레딧의 그의 이름과 김태우의 이름을 나란히 기재했다.

 

이중 '흥부'는 올해 2월 14일에 개봉, 누적관객 38만 6990명을 동원해 흥행에 실패했다. 다만, 작가 흥부에게 '흥부전'의 모티브를 제공한 가상의 인물 조혁 역할을 맡았던 김주혁의 연기에 대해서는 안정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는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독전'. (사진 = NEW)

'독전'은 5월 22일 개봉해 504만 382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을 뿐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김주혁에게 대종상영화제 남우조연상까지 안겨준 작품이다.

 

김주혁은 극중 아시아 최대 마약시장의 거물 '진하림' 역을 맡아 보스의 카리스마와 마약 중독자의 광기를 함께 표현하는 어려운 과제를 인상적으로 풀어냈다. 영화 자체는 흥행과 무관하게 이야기가 상투적이고 스타일에 허세가 넘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배우 대부분이 강렬한 연기로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했고, 특히 김주혁과 그의 아내로 출연한 진서연이 함께 한 장면들이 관객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며 입소문을 일으키는 데 크게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유작에서도 김주혁의 연기는 확실히 빛이 났다. 예전의 연기를 딱히 싫어했던 것은 아니지만, 순하고 헐렁하기 짝이 없는 '구탱이 형'의 캐릭터를 잠시 잊게 할만큼 이후의 연기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와 연기 열정은 놀랍다.

 

기자에게 주어진 조금의 지면을 할애해서라도 언급하고 싶을 만큼 최근 몇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칭찬 받아 마땅했다. 배우 김주혁 연기 인생이 화려하면서도 충실한 2막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다가가는 것 같았다. 1년 전 불의의 사고만 아니었다면, 언급한 촬영감독의 예언 역시 적중했을 것이라 믿는다.

 

재능있는 사람이 단명하는 예가 많은 것은 하늘이 그 재능을 필요로 해서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김주혁의 재능은 연기력보다는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성품일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 모두가 그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박 2일' 멤버 데프콘의 말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생각한다.

 

지인이 아닌 팬으로써는, 그가 그래도 활발히 활동했던 배우여서,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었다는 데서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겠다. 필모그래피가 10편을 훌쩍 넘는 주연 배우이고, 그가 출연했다면 뻔하디 뻔한 B급 장르 영화가 아닌 인간적인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임을 믿을 수 있으며, 그래서 다시 찾아볼 영화도 많아 좋다. 그리고 갈수록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존경스럽기도 하다.

 

개인적 친분이 없어 생전에 전할 기회가 없던 말도 이 지면에 담는다. 김주혁 씨, 팬입니다. 좋은 작품들을 남겨주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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