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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

또 하나의 전쟁,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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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손예성기자 |  2017.07.10 18:48:07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은 역사 기록이 아니다. 사람의 이야기다. 70여년 세월 동안 역사가 숨겨온 ‘사람’의 이야기를 기자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필자는 책에서 묻고 있다. 인간은 왜 존엄해야 하는가. 그들은 왜 죽어야 했나. 총칼 자욱 선명한 역사 속에서 잃었던 ‘사람’을 찾고 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그 이름 하나하나를 써내려 갔다. 그 작업은 결국 내 부모, 이웃, 그리고 나에 대한 물음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1950년을 전후해 한반도 전역에서는 무수한 작은 전쟁이 있었다. 
 
1951년 3월 14일, 임실의 한 폐광굴에 남산리 마을 주민 700여 명이 갇힌 채 시커먼 어둠 속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군경은 양쪽에서 입구를 틀어막은 뒤 한쪽 입구 앞에서 고춧대, 솔잎 등을 태운 연기를 굴속으로 들여보냈다. 숨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바깥으로 뛰쳐나온 주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군경의 기관총이었다. 이날 700명이 넘는 민간인이 굴 안에서 죽었다. 바로 오른편 언덕 위 국립임실호국원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경은 물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지사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국가는 66년 세월 동안 이들의 죽음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   

영암 구림마을에는 ‘지와목 사건 순절비’가 있다. 1950년 10월 7일, 빨치산 인민유격대는 야간에 마을을 기습해 기독교 신자와 경찰 가족 등이 포함된 우익 인사 28명을 지와목에 있는 주막에 가두고 불을 질렀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며칠 뒤 군경 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수복되자 보복 학살이 단행되었다. 지와목에서 죽은 우익 인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1976년 한국반공연맹이 주축이 되어 이곳에 순절비를 세웠다. 지난 2006년 이 지역에 위령탑 하나가 더 세워졌다. 보복 학살의 피해자들을 위한 비석이었다.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이라는 이름의 이 비문에는 “가해자와 피해자 너와 나 낡은 구별은 영원히 사라지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향기만 가득하리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렇게 영암 구림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추모가 공존하고 있다. 

▲전남 영암군 금정면 냉천부락에 거주 중인 백행기 씨와 그의 부인 강행례 씨. 백씨는 냉천 토벌작전에서 어머니와 두 동생을 잃었다.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는 정찬대 기자가 호남과 제주 지역의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60여 년 전 벌어진 ‘민간인 학살’의 실체를 취재한 내용이다. 호남·제주, 영남, 강원, 충청, 서울·경기를 아우르는 프로젝트 중 첫 번째 기획인 이 책은 영암·구례·화순·함평·순창·남원·임실·제주 등 호남과 제주 지역 여덟 곳에 골골이 밴 학살의 기록을 담았다. 

필자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남겨야 할  것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책을 시작했다. 수년간 학살 현장을 누비며 당시 사건의 마지막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다.  그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 이념을 뛰어넘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그 이야기는 영원히 기억돼야 할 역사 그 자체다. 2005년 발족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적잖은 미규명 피해 사례를 역사적 진실로 규명했지만, 수많은 희생자 가족은 여전히 국가로부터 어떤 배상도 받지 못했다. ‘진실규명 결정통지서’를 받은 후 3년 이내에 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몰라 신청 기간을 넘긴 이도 부지기수다. 

이들의 기막힌 삶을 지금까지도 우리는 제대로 조명하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이미 용서를 말하고 있지만, 가해자는 누구도 사과를 건네지 않는다.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반쪽 역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이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려 한반도의 군경들 역시 ‘악의 평범성’에 매몰되어 기계적으로 학살에 가담했다고 설명한다. 그들 역시 이념의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인간의 광기였을까. 

그 생지옥 속에서 젊은 기자는 묻고 있다. 그날 누가 왜 그들을 죽였나. 왜 국가는 지금까지 그들에게 사죄하지 않나. 기자는 역사의 화해는 진실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책에서 말하고 있다. 

<꽃 같던 청춘, 회문산 능선 따라 흩뿌려지다>(정찬대 지음, 한울 아카데미 펴냄)


지은이 소개

정찬대
1976년 전남 영암에서 출생했다.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시사월간지 정치부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다양한 매체에서 정치 현장의 기록자로 지내왔다. 2015년 인터넷 매체 ≪커버리지≫를 창간했으며, ≪프레시안≫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사와 칼럼 등을 쓰고 있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기록”은 저자의 고향인 영암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궁금점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7년, 여순 사건과 관련해 전남 구례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을 취재하면서 이 문제에 더욱 천착하게 됐다. 현재 전국을 다니며 관련 사건을 취재·발굴 중이며,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와 함께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 작업에 참여 중이다.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저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수집 자료를 정리·분석하는 작업을 도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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