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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밀정’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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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윤지원기자 |  2016.09.26 18:31:09

▲영화 '밀정'이 개봉 3주차 주말을 넘기면서 7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상영 회수 점유율 41%에 독과점 논란 등장


김지운 감독, 송강호, 공유 주연의 영화 ‘밀정'이 개봉 3주차까지 1100개 이상의 스크린 수를 유지하며 3주째 정상을 차지했다. 흥행 대작이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스크린 독과점에 관한 논란은 이번에도 불거져 나왔다. 다만, 이번엔 양상이 달라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밀정’은 개봉 첫 주말인 9일~11일 동안 일 1400여 개 스크린에서 총 1만 9850회 상영되었다. 주말 3일간 ‘밀정’의 상영 점유율은 41.0%에 달했다. 같은 날 개봉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18.1%에 해당하는 8750회 상영되었다. 두 영화의 상영 점유율은 거의 60%에 육박했다.


게다가 극장은 관객이 많이 모이는 황금 시간대에 다른 영화들을 빼고 ‘밀정’과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주로 틀었을 것이므로, 관객이 느끼는 체감 상영 점유율은 이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주말 오후 극장을 찾은 대부분의 관객은 10개 스크린을 가진 멀티플렉스에서도 오로지 ‘밀정’과 ‘고산자’만 적혀있는 메뉴판을 놓고 무엇을 볼지 골라야 했을 것이다.


10년 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개봉하면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불거졌는데, 당시 쇼박스가 배급한 ‘괴물’의 스크린 수는 647개로 ‘밀정’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올해 2월 초 ‘검사 외전’이 개봉 주말 무려 17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했을 때에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뜨거웠다. ‘괴물’과 비교하면 거의 세 배에 육박했다.


▲2006년 647개 스크린을 차지하고 개봉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휩쓸렸던 영화 '괴물'의 포스터. (사진=쇼박스)



잘 만든 영화의 높은 점유율, 당연한 시장 원리


‘밀정’이 점유한 스크린 수는 600만 관객을 돌파한 역대 개봉 영화 53편 가운데 9번째로 많다. ‘밀정’의 상영 방식을 두고 독과점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검사 외전’은 3주차 주말 스크린 수가 700개 정도로 줄어들었음에도 독과점 관련 기사들이 계속 이어진 데 비해 이번 주말 전후에 ‘밀정’의 독과점 논란을 다룬 기사는 없다. ‘밀정’의 3주차 스크린 수는 여전히 1200개 이상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앞의 두 사례에 비해 ‘밀정’에게는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져 있는 분위기다.


이 면죄부는 ‘밀정’을 배급한 워너브러더스 코리아가 국내 4대 메이저 배급사(CJ E&M, 쇼박스, 롯데시네마, NEW)가 아니라는 데서 비롯된다. 자기 극장 체인을 소유한 대기업이 아니므로 ‘자기 영화 밀어주기’식 독과점 논란과는 다르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밀정’이 이처럼 많은 스크린과 상영 회차를 차지하고 유지하는 이유는 순전히 극장이 시장 원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이며, 극장 입장에서는 흥행 확률이 가장 높은 영화를 더 자주 틀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입장에서, ‘밀정’은 완성도가 높고,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가 뛰어나며, 민족의 역사적 아픔을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개인의 선택의 무게에 대한 유의미한 고찰이 담긴 훌륭한 영화였고, 따라서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제작사가 이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고 홍보하기 위한 총제작비는 대략 140억 원이었다. 거액이 투입된 대작 영화인만큼, 손익분기점도 420만 명으로 높았다.


‘밀정’이 만약 지금의 절반인 600개 정도의 스크린에서 개봉했다면, 흥행 속도는 지금보다 느렸을 것이다. 그러면 손익 분기점을 넘는 시점도 뒤로 미뤄지게 된다. 그래도 관객이 인정하는 훌륭한 영화라면 좌석 점유율이 떨어지는 속도도 그다지 느리지 않을 것이고, 극장에 오래 걸려 있는 동안 계속해서 일정 수준의 관객이 들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이 꼭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며, 독과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독과점은 리스크 큰 영화의 불가피한 전략인가?


그러나 그동안 ‘밀정’이 매주 몇 편씩 개봉하는 새 영화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새 영화들 중에는 세계 최고의 흥행작들을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대작 오락 영화들도 자주 포함된다. 새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모바일과 SNS를 통해 전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고, 개봉한 지 오래된 ‘밀정’을 보려던 관객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새 영화를 보기로 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투자 배급 전문가들은 이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했을 것이고, 그 결과, ‘밀정’같은 대작 한국 영화는 개봉할 때 최대한 많은 스크린과 상영 회차를 확보해서, 가능한 한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수익을 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같은 주에 개봉하는 경쟁 영화들과 스크린 확보 경쟁을 치러야 한다.


140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훌륭한 영화가 자칫 무너지는 일이 생기면 한국 영화 산업 전체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문화 다양성과 볼 권리를 외치던 사람들도 ‘밀정’ 같은 대작의 스크린 확보 경쟁에 대해서는 그 당위를 관대하게 인정해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정리하자면, ‘밀정’은 할리우드 대작과의 경쟁과 급격한 관람 문화의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반에 많은 스크린 확보가 필요했다. 다행히 영화가 훌륭했던 덕분에 극장들도 ‘밀정’을 지속적으로 선택해 주었다. ‘밀정’은 개봉 3주차 주말의 마지막 주말인 23일~25일 사이에도 1만 4173회나 상영되며 전체 상영 점유율 30%를 유지했다. 25일까지 ‘밀정’이 동원한 관객은 689만 3800명에 달했다. 독과점 규제가 있었다면 ‘밀정’의 이런 흥행은 장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관객은 개봉 3주차 주말까지 백만 명에 미치지 못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같은 전략에도 불구하고 '고산자'는 실패 - 승자 독식 구조 괜찮을까?


이 얘기를 하는 동안 잠깐 잊고 있었던 영화가 한 편 있다. ‘밀정’과의 스크린 확보 경쟁에서 밀려 두 번째로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던 ‘고산자, 대동여지도’다. 이 영화는 총제작비 120억 정도를 들인 또 다른 대작 한국 영화였고, 손익분기점이 300만 명 이상이었다. 첫 주부터 ‘밀정’과의 흥행 대결에서 밀려난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3주차 주말 상영 회수는 5.8%인 2621회로 떨어졌다.


상영 회수의 차이는 관객 수의 차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25일까지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누적 관객은 94만 8632명으로, 손익 분기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다음 주말까지 극장가에 대단한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흥행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완성도나 대중성에 관해 호불호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참패할 만큼 못 만든 영화라는 평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도 ‘밀정’과 동일한 전략을 택했지만 스크린 점유율에서 조금 밀려난 2위로 출발했을 뿐이다. 하지만 3주 후의 결과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앞서 스크린 독과점을 옹호하던 ‘대작을 살려야 한국 영화 산업에 이익’이라는 논리가 1등에게만 통하는 논리라면, 2등 이하의 모든 영화들은 너무나 불리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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