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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나빴다. 21세기 '강남 엄마'는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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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기자 |  2015.10.23 17:51:11

영화 ‘사도’를 둘러싼 강남 엄마들과 강남 자녀들의 대립이 웃기면서도 슬프다. 강남 엄마들은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저런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처참한 교훈을 주려고 자녀들을 이끌고 영화를 보러 갔단다. 그러나 정작 자녀들은 영화를 본 뒤 “나처럼 불쌍한 사도세자”라는 생각만 했단다.

이미 학창시절을 지난 20, 30대는 영화를 보면서 입시공부에 시달리던 과거가 생각나 철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도 있다.

사도세자 비극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친 아들이 나빴다’는 전통적 해석부터, 최근에는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권 노력의 정치적 이간질에 영조가 놀아나 멀쩡한 아들을 죽였다는 ‘사도세자 무죄론’도 나오고 있다. 잘못을 어디에서 찾든, 비극의 기본구조는 ‘기대하는 부모’와 ‘못 미치는 자녀’의 대립이다.

문제는, 250년 전 왕가에서 빚어진 비극적 구도가 21세기 한반도에 더욱 더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실현적 예언 실현시킨 영조

영조는 잔인한 아버지다. “아들이 미쳤으니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영조의 잔인성을 지적한다. 아무리 아들이 미쳤기로서니 폐세자 시켜 왕이 못 되게만 하면 됐지 죽일 필요까지는 없지 않았냐는 지적을 대부분 연구자들이 한다. 이번에 나온 영화 ‘사도’도, 국민배우 송강호가 영조 역할을 맡는 바람에, 잔인한 영조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는 실패한 측면이 있다. 그래도 제작진은 잔인한 영조를 부각시키려 노력했다는 후문이다. 

영조는 잔인한 왕이었지만, 그래도 영조는 ‘왕의 자리’란 천하제일의 영광을 물려주겠다는 조건 아래 잔인했다. 아들이 없던(큰아들 효장세자가 10살 때 죽었으므로) 영조는 사도세자가 태어나자마자 왕세자로 봉해 ‘다음 왕’으로 공인시켰다. 

이렇게 ‘다음 왕’ 자리에 대한 보증수표를 준 뒤, 영조는 혹독한 왕 키우기 교육에 돌입한다. 수시로 공부 진척 상황을 묻고, 미진하면 불호령을 내린다. 그러나 태생이 문(文)보다 무(武)를 좋아하고, 방안보다는 야외를 좋아한 사도세자는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니, 영조는 처음부터 아들이 못 이겨내도록 ‘조종’한다. 이런 식이다. 공부하라고 강조하는 아버지 뜻에 맞춰 아들 사도세자는 ‘독서가 가장 즐겁다(讀書最樂)’고 시를 쓴다. 헌데 영조는 이 시를 보고 칭찬하기는커녕 “네 천성상 놀이가 가장 즐겁다(遊戱最樂)고 써야지 독서가 어찌 너의 즐거움이 될 수 있느냐? 넌 거짓말쟁이야”라며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린 세자에게 망신을 준다. 노력해도 혼나고, 안 해도 혼나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이런 괴로움을 사도세자는 열세 남짓부터 27살 뒤주에서 숨질 때까지 계속 받았다. 미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영조의 교육은 요즘 교육심리학으로 말하자면,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피그말리온 효과)의 좋은 예다. 한 학급의 학생 중 무작위로 몇 명을 뽑아 “이 학생은 아이큐가 좋아 공부를 잘할 거야”라고 교사에게 말해주면 실제로 교사가 그 학생에게 더 기대를 걸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공부를 더 잘하게 됐다는 실험 결과를 말한다. 공부를 잘할 거라고 기대하면 공부를 잘하게 되고, 못할 거라고 기대하면 못하게 된다는 실험결과다.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너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절대로 열심히 할 리가 없다”고 몰아붙여 결국 공부 못하는 문제아 아들을 만들어냈다. 

그래도 영조는 '왕좌를 내걸고' 잔인하게 교육을 시켰다. 이른바 ‘로열 패밀리의 교육법’이다. 헌데, 요즘 이른바 ‘강남 엄마’들은, 영광의 자리를 물려줄 준비를 하고 공부를 닦달하는지 묻고 싶다.
 
“있지도 않은 직장이 있는 것처럼 거짓 교육 시키는 한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한국에 와서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쓸모없는 교육을, 있지도 않은 직장을 위해 준비시킨다는 소리다. 

한국에는 일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위한 일자리는 멸종될 태세다. 그리고 모든 돈은 재벌 손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명문대를 나오면 잘 먹고 잘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날 얘기다. 명문대를 나와도 직업전선과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강남에선 아이들 공부방 용으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소형 밀폐공간을 사들이는 게 유행이라는 보도도 있으니, 250년 창경궁의 뒤주와 21세기 한국 아파트 안의 밀폐 공부방이 묘하게 겹친다. 

영조처럼 줄 듯 안 주고 죽이는 왕도 나쁘지만, 줄 것도 없으면서 “그냥 달리다보면 뭔가 얻어걸리긴 걸릴 거야”라면서 무보증 수표부터 발행하는 엄마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다. 

앞에서 말한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신이 조각한 여자 조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 왕에게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어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줬다는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신화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제발 공부 좀 해라”는 간절한 성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희미하더라도 미래의 희망 불빛을 만들어 청춘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사회적 간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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