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환자의 한 부분에 집중해 치료를 하고, 간호사는 환자 삶 전체를 케어하고 변화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더욱 큰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김수지 말라위 대양간호대학 학장(71)은 간호사의 역할과 자세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현장실무에 적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임상 현장의 실무와 연계한 실습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간호 교육자의 변화는 교육현장과 간호사 변화는 물론 결국 환자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김 학장은 31일 서울 호텔리베라에서 열리는 을지대 간호국제학술대회 참석하기 위해 지난 22일 내한했다. 지난 2011년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빈국 말라위에 건너가 간호인재 양성 및 사회복지 시스템구축에 매진하고 있다.
1942년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1978년 5월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간호학 박사를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겪은 ‘여수·순천반란사건’이 간호사가 된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연세대·이화여대 박사과정을 개설하는 등 국내에서 본격적인 연구와 후학양성에 매진했고, 1983년부터는 6년간 10여명의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정신상담을 펼쳐왔다.
이를 토대로, 1989년에는 세계 최초로 정신과 환자 재활에 관한 이론(사람돌봄이론)을 발표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쌓았다. 실제 이론을 접목해 WHO(세계보건기구)등과 함께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여 2001년 국제간호사협회로부터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여기에 국내 간호학 박사 1호이자, 2001년 간호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한 한국 간호계의 전설로 불려지고 있다. 다음은 김수지 학장과 일문일답.
▲ 현재 말라위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는데 이 지역은 어떤 곳인가.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최빈국이다. 인구는 1500만 정도. 말라위는 19세기 다른 모든 아프리카 국가가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짓밟힐 때도 전혀 침략을 받지 않은 나라다. 그만큼 자원이 전혀 없는 나라이다보니 전쟁없이 평화로운 나라이지만 국민의 삶은 궁핍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지난 2003부터 3년간 대기근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말라위 대통령이 UN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나라이기도 하다.
▲ 말라위와의 인연은 어떤 계기로 이루어졌나.
한라대 간호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백영신 교수가 1994년부터 말라위에서 헬스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2003년 대기근때에도 그곳에서 버티면서 말라위 국민들을 돌봐 말라위 정부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는 지인이다.
2010년 말라위 대통령이 방한한 당시, 수행으로 한국에 와서 나를 만났는데 다짜고짜 간호대학을 만들었으니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백 교수는 자신이 지금 암투병중이고, 곧 수술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면서 꼭 맡아달라고 했다.
이후, 백 교수가 수술 받는 날, 병문안 갔더니 아예 비행기표를 끊어 놓고 내밀더라.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현재까지 있게 됐다.
▲ 간호사가 될 생각은 언제부터 했는가.
초등학교 1학년때 고향 여수에서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로 끌려와서 총살 당했던 시절이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으로 끌려와서 총살을 당했는데 다행히 죽지않고 부상을 입었는데 치료하는것을 두려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주머니 한 사람이 그 사람을 거뒀다. 부상을 치료해주고 밤을 꼬박 새우며 극진하게 간호하더니, 결국 그 사람을 살려냈다.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라고 물었더니 자신은 “간호사다”라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나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고, 이후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 간호학 박사는 언제 취득했나.
1960년 이화여대에 입학한 뒤 이화여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미국에 체류중이던 1975년부터 미국 보스턴 대학 학업을 이어갔다. 결국 1978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호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리고 78년에 국내 들어와 연세대에서, 79년에는 이화여대에서 박사과정을 신설했다.
▲ 국제간호대상은 어떤 상인가.
간호사 조직중에서 세계 최대조직인 국제간호협의회는 1999년 2년에 한번씩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이어가는 주인공에게 주는 간호계의 노벨상이다. 2001년 수상한 이유는 정신과 환자 재활시키는 이론(사람돌봄이론)을 인정받았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가 이론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1983년 이화여대 연구실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젊은 질환자(당시 20대중반)가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상담을 청하면서 “왜 길거리에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는 환자들도 많은데, 병원에 오는 사람들만 치료하느냐”며 따졌다.
사실 무척 충격이었다. 내가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정신질환자 간호가 나의 전공이었는데 사실 그들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이후 그 젊은 질환자등 10여명을 대상으로 6년간 매주 토요일마다 상담을 가졌다.
그들은 치료과정에서 구타와 온갖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이에 대해 많이 가슴아파했다. 당시에는 정신병이라고 하면 무조건 격리하고,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6년간 그들에게 들었던 환자들의 경험과 섬세한 히스토리를 담아 이론으로 정립했다. 10여개의 개념을 만들었다. ‘동참’‘나눔’‘공유’‘경청’‘동행’‘용서’ 등이다. 체계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재활을 돕는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후 UNDP,WHO와 함께,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해 이론을 접목시켜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 이번 을지 간호학술대회 주제 ‘간호전문직의 도전’을 설명해달라.
변화를 위한 도전이다. 사람들은 간호사가 단순히 의사를 보조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의사는 사람의 한 부분인 장기에서 일어난 질병을 치료하는데 집중한다면, 간호사는 인체 한 부분 보다는 환자의 삶 전체를 케어하고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는 오감이 발달해 한눈에 사람들을 알아볼수 있어야 한다. 간호교육 이론이 중요하지만 임상에서 적용되지 않는 이론은 소용이 없다. 간호이론이 환자의 삶 전체를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래서 케어링이라고 하고, 사명감이 필요한 것이다.
간호실무가 중요하다.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임상에서 배우는게 별개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실무에 밝아야 간호교육도 제대로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교육자의 변화→교육현장의 변화→간호사의 변화→환자의 변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도전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김수지 학장의 얼굴은 온화한 표정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