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추석이 두려운 셀러들…이커머스 ‘살생부’ 실체

도기천 기자 2024.08.28 10:07:20

‘제2의 티메프’ 어디? 블랙리스트 돌아
가뜩이나 흉흉한데…떨고 있는 셀러들
일부 유통사 “추석 전 대금 조기지급”
돌려막기 연명하는 이커머스 ‘언감생심’
“신뢰 회복이 살길…새 시스템 갖춰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제2의 티메프’ 명단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쇼핑몰 ‘알렛츠’가 돌연 폐업을 선언해 이커머스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8월 31일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홈페이지 공지문. (사진=알렛츠 홈페이지 캡처)

티몬·위메프(티메프)의 협력업체 미정산 사태가 좀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이커머스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셀러(판매자) 사이에선 ‘제2의 티메프’ 리스트가 돌고 있고, 리스트에 오른 업체에서는 셀러와 고객의 탈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협력사 납품대금 정산주기를 줄이는 등 ‘상생’에 나선 유통기업들도 있지만, 대다수 이커머스들에겐 딴 세상 얘기다. 기로에 선 시장 상황을 CNB뉴스가 집중 취재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처음에 티메프 사태가 터졌을 때는 솔직히 풍선효과를 기대했습니다. 티메프에서 이탈한 고객과 셀러들이 저희 쪽으로 올 거라 예상한 거죠.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닙니다. 이커머스를 넘어 온라인쇼핑 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되고 있어요”(국내 대형 이커머스업체 관계자)

티메프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커머스업계의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셀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상대적으로 정산 기간이 긴 오픈마켓 중 일부를 콕 집어 ‘제2의 티메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적시해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이른바 ‘살생부’가 나돌자 고객(회원)들까지 동요해 이커머스 시장 전체의 신규 가입자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제2의 티메프’는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가구·가전을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알렛츠’는 이달 말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했다. 티메프 사태 여파로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아 투자유치가 불발되자 서비스 종료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폐업을 선언한 한 이커머스 업체 사무실. 텅 빈 직원들의 자리가 을씨년스럽다. (사진=연합뉴스)

NHN위투가 운영하는 디자인 문구 및 생활용품 쇼핑몰 1300K(천삼백케이)도 이커머스 시장이 위축되면서 문을 닫기로 했으며, 모바일 교환권 발행업체 엠트웰브는 티메프 사태로 경영난을 겪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티메프 사태 직전인 지난 6월 말에는 문구용품 이커머스 플랫폼 ‘바보사랑’이 폐업을 결정한 바 있다.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정산 기간을 20일 이내로 줄이자는 게 골자다.

이런 가운데 일부 유통기업들은 협력사에 대한 대금 지급 주기를 단축하는 등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TV홈쇼핑 업체 CJ온스타일은 오는 9월 판매분부터 협력사에 대한 대금 지급 주기를 현재 평균 12일에서 7일로 단축하기로 했다. 현재 CJ온스타일은 월 세 차례에 나눠 협력사 대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첫 대금 지급 주기를 평균 5일가량 단축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매출 조건 없이 모든 협력사에 전체 판매금의 80% 이상을 선지급하기로 했다.

CJ온스타일 측은 “티몬·위메프 사태로 고조된 협력사의 대금 정산 불안감을 해소하고 원활한 자금 운용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는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달 5일 민주당 의원들이 온라인플랫폼법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스토아는 민간 홈쇼핑 최초로 운영 중인 ‘유통망 상생결제 제도’를 적극 알리고 있다. 이 제도를 활용할 경우 SK스토아가 자체 재원으로 마련한 예치금을 통해 판매 대금을 3일 이내 조기 지급받을 수 있다. 또한 자체적으로 ‘빠른 정산 프로세스’를 마련해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추석 기간 상여금 지급 등 일시적 비용 지출이 커지는 것을 고려해 3500여개 파트너사에 8월분 판매대금 4000억원을 조기에 지급한다. 지급일은 다음 달 13일로 정산 기간을 일주일가량 앞당겼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신세계DF, SSG닷컴, 신세계L&B 5개 계열사가 참여해, 2000여개 협력회사에 2600억원 규모의 납품 대금을 추석 전 조기 지급할 예정이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도 오는 추석을 맞아 중소협력사를 대상으로 정산 대금 500억원을 조기 지급한다. CU와 상품 및 물류 등을 거래하는 90여개 중소 협력사가 대상이다.
 


제살 깎는 사업구조…텅빈 곳간 ‘악순환’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주로 오프라인 유통기업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고, 이커머스 기업들 중 판매대금을 조기 정산하고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정산 지연 사태 피해자들이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는 대부분 이커머스들이 사내유보금(잉여금)을 갖춰놓을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판매자들이 들어와서 자기 물건을 판매하는 장터(플랫폼)만 열어놓으면 되기 때문에 사업구조가 단순하고 자기 자본금이 낮은 편이다.

여기에 국내 업체들 간 출혈경쟁은 물론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발 이커머스 공세가 거세지면서 사실상 ‘돌려막기’로 연명하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이 늘고 있다.

소비자 결제 이후 한두 달 뒤 판매자에게 대금을 정산해주는 구조다 보니 당장 적자가 나더라도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부실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셀러에게 판매대금을 조기에 정산해주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 온라인몰 관계자는 CNB뉴스에 “쿠팡과 같은 대형 이커머스는 거액의 유보금을 갖춘 상태라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낮지만, 티메프 사태에서 보듯 중소 플랫폼들은 곳간이 텅빈 상태에서 소비자의 결제금액 만으로 사업을 하고 있기에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업계가 이번 사태를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고객과 셀러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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