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르포] 임시정부수립 100년…‘마포 소녀상’의 첫돌

1년간 떠돌다 안착해 첫 생일…고난의 여정 마쳐

도기천 기자 2019.04.11 15:54:52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인 11일 오후 마포중앙도서관 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이 소녀상은 1년간 거리를 떠돌다 작년 4월 이곳에 발을 내디뎠다. (사진=도기천 기자)  

작년 4월 임시정부수립일을 맞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중앙도서관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첫돌을 맞았다. 전국 각지에 80여개의 소녀상이 있지만 유독 이 소녀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세워진 자리가 역사적 의미가 큰데다 이곳에 오기까지 여러 곡절을 겪었기 때문. CNB가 사연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상암동·홍대 떠돌다 도서관 안착
1주년 행사 청소년들 대거 참석
인근에 일본군 기지…상징성 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된지 꼭 100년이 되는 11일, 옛 마포구청 터에 위치한 마포중앙도서관 앞마당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포평화의소녀상건립위원회(위원회 이봉수)가 소녀상 건립 1주년 행사를 연 것.

이날 행사는 시민·학생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순향 교수의 살풀이를 시작으로 이산하 시인의 시낭송, 에콰도르 민속공연팀 가우사이와 기타리스트 김광석, 가수 임선호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들은 노래와 율동으로 80여년전 일본 군대에 강제로 끌려간 어린 여성들의 넋을 위로했다. 특히 소녀상 모금운동에 참여했던 이 지역 청소년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소녀상이 이곳에 자리 잡기까지는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2017년 3월, 당시 이봉수 마포구의원(서강·합정동)이 구의회에 ‘소녀상 설립 결의안’을 내면서 소녀상 세우기가 시작됐다.

마포주민들은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했고, 상암고, 서울디자인고, 광성중고, 신수중, 창천중 등 마포 관내 11개 중고교의 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거리서명, 기금마련 콘서트, 일일찻집 등을 벌여 3천여만원을 모았다.

이 와중에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박정희기념·도서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러자 추진위 내에서 소녀상을 박정희기념·도서관과 가까운 곳에 세우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곁에 ‘소녀상’을 둠으로써 역사 왜곡을 막자는 취지였다.

유력하게 거론된 곳이 마포구 상암동에 복원된 ‘옛 일본군 장교관사’ 앞이었다. 상암동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침략전쟁을 수행하던 일본군 병력이 주둔했던 곳이다. 이곳에 대규모 일본군 장교관사 단지가 존재했고, 10여년전 SH공사(서울주택도시공사)가 상암지구 택지개발을 진행하면서 일부를 복원했다. 장교관사는 박정희기념·도서관과 불과 5백미터 남짓한 거리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 ‘이곳에 소녀상이 세워지면 장교관사 또한 영원히 보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결국 백지화 됐다. 당시에 일제 흉물인 장교관사를 철거해야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소녀상은 일부 주민들의 반발로 건립 위치를 찾지 못해 1년간 거리를 떠돌았다. 지난해 3.1절 전날 홍익대 앞 건립이 좌절돼 트럭에 실려 떠나고 있는 모습(왼쪽), 서강대교 아래 차고지 임시보관(가운데), 현재 마포중앙도서관 앞마당에 자리잡은 모습(오른쪽). (사진=도기천 기자)

다음 후보지가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였다.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방문코스인데다 10~20대 젊은층이 주를 이루는 곳이라 ‘소녀상’이 청소년교육과 역사문화관광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합지로 추천됐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이 ‘일본인 관광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무산됐다.

이후 논의된 장소는 홍익대 정문 앞 작은 공원이다. 국유지인데다 홍대를 오가는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일제 만행을 알릴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그러자 홍익대 재단 측이 “일본과의 학술교류에 방해가 된다”며 반발했다. 학교 측은 소녀상 진입에 대비해 대형화분과 승용차 등으로 공원을 봉쇄하기까지 했다.

결국 지난해 3.1절을 기해 소녀상을 세우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날 홍익대 총학생회는 학교측의 처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고, 추진위는 홍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때 소녀상은 잠시 동안 땅을 디뎠지만 다시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그 모습이 마치 일본군 군용트럭에 실려 가던 80여년 전의 소녀들 같았다.

이후 소녀상은 서강대교 아래의 한 차고지에 40여일간 보관됐다. 최초 설립안을 낸 이봉수 당시 구의원의 부탁으로 차고지 회사 측이 받아준 것.

이때 소녀상은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 온몸이 하얀 천에 둘러싸여 꽁꽁 묶인 채 차고지 마당 구석에 서 있어야 했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은 마음이 불편했다. 보관 기일이 길어지면서 운전기사들은 소녀상을 치워달라고 이 의원에게 항의했다.

이에 이 의원은 소녀상을 마포구의회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일부 구의원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마포평화의소녀상건립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주민·청소년들이 11일 오후 3시경 마포중앙도서관 광장에서 소녀상 건립 1주년 행사를 갖고 있다. (사진=도기천 기자) 

CNB기자 제안에 설립날짜 바꿔

결국 박홍섭 당시 마포구청장이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마포관내에서 소녀상을 떠돌게 해서는 안된 다는 의지였다.

박 청장은 옛 마포구청 자리에 지어진 구립 마포중앙도서관에 소녀상을 유치하기로 결심하고 도서관 측을 설득했다. 도서관은 연면적 2만229㎡에 7층 규모를 갖추고 2017년 개관한 마포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대식 시설로 하루 이용자가 수천여명에 이른다.

특히 과거 일본군 기지로 활용됐던 상암동과 직선으로 4km 남짓한 거리라 지리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도서관이라는 교육적 의미와 지리적인 역사성 모두를 갖춘 최적의 위치인 셈이다.

박 청장의 결단으로 마침내 지난해 4월13일 도서관 마당에서 소녀상 제막식이 열렸다. 설립안이 발의 된지 13개월 만이었다.

제막식 날짜를 4월13일로 정한 것은 당시 취재에 나선 CNB기자의 제안이 단초가 됐다. 3.1절날 홍대에서 소녀상이 철거될 때 추진위가 기자회견에서 “내년 3.1절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자 이를 취재하던 CNB 기자가 “아직 4월11일(임정수립일)이 남아 있다”고 제안한 것이 단초가 됐다.

 

소녀상이 1년간 떠돌다 마포중앙도서관에 안착한 작년 4월 13일, 당시 제막식에서 어린 학생들이 ‘소녀’를 위로하듯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마포소녀상건립추진위 제공)

올해 소녀상의 첫돌 기념행사는 ‘4월13일’에서 ‘4월11일’로 바뀌었다. 생일이 달라진 이유는 최근 문재인 정부가 역사연구를 통해 13일이 아니라 11일이 임정수립일이라는 걸 밝혀냈기 때문.

1989년 기념일로 제정될 때 임시정부 수립일의 근거자료는 ‘조선민족운동 연감’(일제의 비밀문헌)이었는데 그동안 학계에서는 연감의 날짜가 잘못됐다고 지적해 왔다. 이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가보훈처가 전문기관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결과 11일이 맞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온갖 곡절 끝에 소녀상은 11일 1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수난 끝에 마포중앙도서관에 오게 된 것은 어쩌면 소녀의 혼이 인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대하는 이들의 불편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소녀가 스스로 알릴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곳이 수많은 어린이·청소년들이 드나드는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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