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앤아이 탄생 20주년 기념해 아카이브북·전시회
정태영 부회장의 결단, 국내 최초 기업서체 낳아
다양한 신용카드 시리즈에 기업철학 그대로 담아
할 거 많고 볼 거 많은 바쁜 시대. CNB뉴스가 시간을 아껴드립니다. 먼저 가서 눈과 귀에 담은 모든 것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현대카드가 디자인라이브러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업전용 서체’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주>
네이버의 나눔서체, 배달의민족의 한나체,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체…
기업이 브랜딩을 위해 전용 글씨체를 개발한 사례들이다. 많은 기업들이 전용 서체로 브랜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마케킹 전략을 펴고 있다.
이중에서도 ‘원조’는 현대카드다. 현대카드는 20여년 전 ‘유앤아이(Youandi)’라는 전용 서체를 선보였다. 당시만 해도 서체로 기업의 브랜드 정체성을 세운다는 발상이 낯설던 시절이었다.
현대카드는 유앤아이 개발 20주년을 맞아 유앤아이 20년 여정을 다룬 전시(10월 13일까지)를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현대카드 디자인라이브러리에서 열고 있다. 전시에 앞서 지난달에는 유앤아이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북 ‘아워 타입페이스(Our Typeface)’를 출간했다.
기자는 지난 2일 이곳을 방문했다.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나가서 걸어가다 보면 정독도서관 옆에 자리해 있다. 벽돌을 쌓아서 만든 담장 안에 통유리를 채택한 2층 규모의 한옥 건물이다.
건물 입구에는 아카이브북 ‘아워 타입페이스’를 알리는 감각적인 포스터가 설치돼 있었다. 아워(Our)는 현대카드에서 선보이고 있는 워터, 툴즈 등 상품 시리즈의 명칭이고, 타입페이스(Typeface)는 서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다.
이곳 프론트데스크에서 현대카드나 다이브 앱을 보여주면 전시를 관람하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프론트데스크 앞에 있는 투명한 진열 선반 위에 아카이브북 여러 권이 일렬로 놓여 있다.
1층 공간의 통유리창에는 유앤아이 서체를 활용한 노란색 영문 글씨가 붙여져 있었다. 벽면에 있는 노란색 설명판에는 ‘유앤아이가 20년간 해낸 일들이 서체 그 이상으로, 현대카드 디자인의 근간이자 브랜드 앰버서더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유앤아이는 2003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부임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정립해 가는 과정 중에 탄생했다고 한다. 신용카드 플레이트의 가로와 세로 비율(1대 1.58)을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이후 전략적으로 활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고유의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 한 번 외에는 외부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
1층 벽면에서는 빔프로젝터로 유앤아이와 책 ‘아워 타입페이스’를 알리는 영상이 투영되고 있었다. 책꽂이 부분에는 유앤아이(2003~2011년), 유앤아이 모던(2012~2020년), 유앤아이 뉴(2021년부터)의 발전사에 대한 노란색 설명판이 설치되어 있다.
초기의 유앤아이는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이 다이너스클럽코리아를 인수하며 새롭게 출범한 현대카드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전용 서체로 개발됐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사용해 CI를 만들고, 비주얼 시스템으로 구축하면서 지속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2012년 유앤아이 모던(Youandi Modern)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처음에 제목용 서체로 개발됐기 때문에, 기본 문서 작업에 꼭 필요한 라틴 알파벳과 한글의 본문용 서체를 추가로 개발했다. 함께 쓸 경우 글줄 흐름 선이 맞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글과 라틴 알파벳을 하나의 서체로 통합 개발해 사용성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유앤아이 뉴(Youandi New)는 2021년 디지털 환경에서 가독성과 심미성을 강화하기 위해 개발됐다.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로직을 정교화하고, 서체 총수를 늘렸다. 사용자가 서체의 굵기와 너비, 기울기 등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가변 서체를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개발했다는 내용을 읽을 수 있다.
평면 책상 위에는 유앤아이의 역사를 활용 사례로 정리한 전시물이 있었다. 유앤아이 초기에 디자이너인 아드 반 도멜렌(네덜란드의 그래픽 스튜디오 토탈 디자인)이 만든 서체 스케치를 볼 수 있다. 26개의 새로운 생활 캠페인 알파벳의 비밀편, 알파벳 카드 초콜릿, 플래티넘 3 시리즈, 더 블랙, 제로 카드에 활용된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상에는 유앤아이 모던 시기의 적용 사례도 정리되어 있다. 메이크 유어 룰 캠페인 복싱편, 카드 팩토리 사이니지, 디자인라이브러리 입구, 아워 워터, M, X 카드에 사용된 아름다운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다.
‘유앤아이뉴(YouandiNew)’로 업그레이드된 서체를 적용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슈퍼 콘서트 브루노 마스 포스터, 아워 툴즈, M, MM, X, Z 카드 발급 패키지, 애플 페이 등에 디지털 환경을 고려한 글자 형태다.
유앤아이 탄생 에피소드 ‘눈길’
유앤아이 역사를 담은 아카이브북 ‘아워 타입페이스’를 읽어볼 수도 있다. 이곳 2층 서재 한쪽에도 이 책이 놓여 있는데,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한 장씩 읽어봤다.
책은 세 종류의 서체 개발에 대한 ‘Three Eras’, 관련 전문가들의 글과 인터뷰를 담은 ‘Thoughts’, 적용한 컬러 사진들을 모은 ‘Expressions’ 등 총 3파트로 구성돼 있다.
책의 맨 앞부분에 유앤아이는 외국인들이 현대(Hyundai)를 발음할 때 ‘H’를 묵음으로 처리해 ‘윤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뉘앙스를 살려 비슷한 발음인 유앤아이(Youandi)로 이름을 정했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내용이 있었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유앤아이를 처음 만든 아드 반 도멜렌의 그래픽 스튜디오 토털 디자인이 토털 아이덴티티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이 회사가 네덜란드 우체국과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는 헤이그 왕립예술원에 재학할 당시 스승이었던 헤릿 노르트제이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시각적 요소와 함께 수학적 계산, 비율에 대해 세심하게 고려해 유앤아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현대카드의 디자인 조직은 2003년 정 부회장이 직접 만든 비주얼 코디네이션팀에서 시작됐는데, 이곳에서 서체를 근간으로 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이후 디자인랩을 조직해 카드 상품을 개발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유앤아이의 리뉴얼도 추진했다고 한다.
정태영 부회장은 책에 실린 CEO 인터뷰를 통해 서체 개발에 대해 “당시 현대카드 디자이너였던 오영식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지금 돌이켜봐도 서체를 만들어야 기업의 브랜딩이 바로 잡힌다는 근본을 중요시한 그의 제안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진보적인 발상이었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30분 만에 모든 결정을 끝내서 그의 일을 쉽게 만들어준 것을 ‘잘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CNB뉴스에 “현대카드의 모든 디자인은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투영한다는 차별성을 갖고 있다”며 “전용 서체인 유앤아이의 오랜 역사도 탄탄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아워 타입페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CNB뉴스=손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