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안방극장, OTT로 부활
‘거거익선(巨巨益善)’ 대화면 선호
AI 더해져 ‘겉은 크고 속은 똑똑’
삼성·LG, 인공지능 TV로 ‘승부수’
파리올림픽 앞두고 시장 기대 ‘쑥’
“대한민국은 IT강국”이란 말은 이제 잘 쓰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가 가장 클 텐데요. 그만큼 국내 정보통신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며 세계에 이름을 날려 왔습니다. 날로 고도화되는 기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혁신적인 제품들이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결과물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IT 이야기’, 줄여서 [잇(IT)야기]에서 그 설을 풀어봅니다. <편집자주>
‘안방극장’이란 말은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한 방에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주말의 명화나 토요명화를 보던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인데요. 1990년대 이전에는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안방극장. 이 단어를 새삼 곱씹어봅니다. 안방에서 영화 보는 행위를 일컬으니 이보다 직관적인 작명이 있을까요? 그 시절엔 불만 끄면 안방이 곧장 극장이 됐습니다.
안방극장이 시들해진 건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이때 멀티플렉스 붐이 일었죠. 대규모 객석, 대형 스크린에 관객들은 매료됐습니다. 집에서 작은 TV 화면으로 영화 보는 재미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사라지는 줄 알았던 안방극장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OTT 플랫폼의 등장이 가장 클 겁니다. 영화 관람료 인상은 덤이고요. 집에서 영화관보다 저렴한 가격에 여러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됐으니 멀리 나갈 필요가 없게 된 거죠. 이때부터 관심은 TV의 크기에 쏠렸습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 크게 봐야 몰입도가 배가 되니까요. 그즈음에 TV 시장에는 거거익선(巨巨益善)이란 트렌드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은 클수록 좋다는 뜻이지요.
말만 번듯한, 허상 같은 유행은 아니었습니다. 숫자가 증명합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에서 판매한 TV 3대 중 1대가 85형(214cm) 이상의 초대형 TV인 것으로 나타난 건데요. 85형은 전년 대비 1.8배, 98형은 전년 동기 대비 약 7배나 더 팔렸다고 합니다. 안방을 극장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확실히 있었던 셈입니다.
삼성전자 “덩치만 큰 게 아니다”
올해는 TV 트렌드가 조금 달라질 듯합니다. 거거익선처럼 사자성어는 아니지만 네 음절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겉커속똑’. 겉은 크고 속은 똑똑하다는 뜻입니다. 핵심은 AI(인공지능)이고요. ‘겉바속촉’처럼 반전 매력이 있는 TV가 등장을 예고했습니다. 데뷔 무대가 펼쳐진 곳은 지난 12일 폐막한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4입니다.
삼성전자의 쇼케이스가 흥미로웠습니다. CES 2024에서 이 회사는 ‘NQ8 AI 3세대’ AI 프로세서를 탑재한 2024년형 Neo QLED 8K TV를 공개했습니다. ‘NQ8 AI 3세대’ 프로세서는 삼성전자가 2020년부터 꾸준히 연구 개발해 온 AI 시스템온칩(SOC) 기술이 집약됐습니다. 전년 대비 8배 많은 512개의 뉴럴 네트워크와 2배 빠른 NPU(Neural Processing Unit)를 가졌다고 하네요.
자, 그래서 얼마나 진일보한 거냐고요? 2024년형 Neo QLED 8K는 이를 기반으로 ▲저화질 콘텐츠를 8K 화질로 선명하게 바꿔주는 ‘8K AI 업스케일링 프로(8K AI Upscaling Pro)’ ▲AI 딥러닝 기술로 스포츠 종목 자동 감지, 공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보정하는 등 영상의 왜곡을 줄여주는 ‘AI 모션 인핸서 프로(AI Motion Enhancer Pro)’ ▲화면의 다양한 음원 중 음성만 분리해 대화 내용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액티브 보이스 앰플리파이어 프로(Active Voice Amplifier Pro)’를 지원합니다. 중언부언 같지만 쉽게 말해 어떤 콘텐츠건 영상은 고화질로 볼 수 있고, 듣고 싶은 말만 따로 추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진짜 똑똑해진 건 접근성에서 나옵니다. 2024년형 삼성 TV에는 세계 최초로 AI와 광학식 문자인식(OCR, 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기술이 들어갔는데요. 이를 활용해 자막을 실시간으로 음성 변환해주는 ‘들리는 자막(Audio Subtitle)’을 틀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삼성전자는 화면의 윤곽선과 색상을 재조정하는 AI 기술을 적용해 저시력자가 별도 기기 없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릴루미노(Relumino) 모드’를 강화했습니다. 특히 일반 화면과 릴루미노 모드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릴루미노 투게더 모드(Relumino Together mode)’를 새로 탑재해 저시력자가 가족들과 함께 TV를 시청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LG전자 “화질·음질 모두 UP”
이제 LG전자 얘기로 넘어가볼까요? 이 회사는 CES 2024가 개막하기 전인 지난 3일, 2024년형 올레드 TV 라인업을 공개하며 선수를 쳤습니다. 전용 인공지능(AI) 프로세서로 더 밝고 선명해진 것이 특징인 제품입니다.
LG전자가 공개한 라인업 중 올레드 에보에 탑재한 알파11 프로세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알파9 대비 4배 더 강력해진 AI 성능을 기반으로 그래픽 성능은 70% 향상, 프로세싱 속도는 30% 더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시죠. 새로운 AI 업스케일링(Upscaling)이 영상을 픽셀 단위로 분석하고 흐릿한 사물과 배경까지도 AI가 스스로 판단해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많이 사용된 컬러를 기반으로 영상 제작자가 의도한 분위기와 감정까지 고려해 색을 보정하기 합니다. 강화된 다이내믹 톤 맵핑 프로(Dynamic Tone mapping Pro)는 장면 속 빛이 들어오는 공간들의 밝기 차이까지 분석해 명암을 세밀하게 조절합니다.
인공지능 음향 기술은 2채널 음원을 이제 가상의 11.1.2채널까지 변환해 풍성한 음향을 구현합니다. AI가 목소리를 주변 소리와 구분해 또렷하게 보정하고, 화면 아래쪽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TV 화면 중앙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려주는 식이죠.
98형 LG QNED TV의 경우 기존 알파7 대비 AI 성능이 약 30% 더 강력해진 AI 알파8 프로세서를 탑재해 초대형 TV에 걸맞은 화질과 음질을 제공합니다. 2024년형 LG 스마트 TV는 계정별로 목소리를 등록하면 음성만으로도 로그인이 가능한 것이 강점입니다. 로그인하지 않더라도 AI가 목소리를 인식해 계정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 TV를 보는 중에 “야구 경기 결과를 알려줘”라고 말하면 목소리 주인공이 선호하는 팀의 결과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끝자락에서야 밝히지만 새해 첫 ‘잇(IT)야기’로 TV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2024년은 TV 시장에 호재가 있는 해이거든요. 하계올림픽이 오는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립니다. 통상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굵직한 스포츠행사를 앞두고서는 TV 판매량이 올라갑니다. 보다 선명한 화질로, 더 큰 화면으로 경기를 생생히 보고 싶은 수요층이 형성되기 때문인데요. 대화면에 AI를 입은 똑똑하고 덩치 큰 TV가 얼마나 ‘먹힐지’ 그래서 궁금합니다. 올림픽과 함께 ‘겉커속똑’ TV가 대세로 떠오를지 함께 지켜보시죠.
(CNB뉴스=선명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