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이 주인이다

이성호 기자 2022.09.22 11:46:52

청와대 영빈관. (사진=청와대, 국민 품으로 홈페이지)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와 수해 피해 그리고 코로나19 장기화 등 민생현안이 산적한 가운데도 이전투구만 벌이고 있는 정치권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나 몰라라” 민생고는 뒷전이고 저마다 요망하는 이익을 챙기기 위해 혈안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 가슴에는 울화가 쌓인다. 그들만의 치고받는 대한민국을 보노라면 이러려고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졌는가 자괴감에 빠진다.

민심을 보기를 돌같이 한다. 배는 산으로 가고 있다. 3고에 시달리는 민생을 외면한 정치권발 논란은 끊임이 없다. 이번에는 느닷없는 영빈관 신축이다.

최근 대통령실은 영빈관을 새로 짓기로 하고 878억원 규모의 사업비를 편성했다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민들은 어려워진 경제 사정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뜬금없이 거액의 국민 혈세를 쓰겠다는 것인데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필요할 순 있겠다. 그렇다면 그 명분과 충분한 설명이 요구됐지만, 과정과 절차는 일체 생략됐다. 더군다나 저마다 모르쇠로 일관함은 가관이다.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고 대통령실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지 단 하루 만에 영빈관 신축 계획을 전면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기가 찰 노릇이다.

막대한 비용을 두루뭉술 쓰겠다고 하다가 즉시 무른 것을 볼 때, 역설적으로 영빈관 신축이 이 시점에서 급히, 반드시, 꼭 필요한 것이었나 싶다.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납세의 의무가 있다.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세금이 결국 나랏돈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은 자들은 함부로 제 주머니에서 쌈짓돈 쓰듯이 이를 허비하면 안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온전하게 쓰여야 한다.

영빈관 역시 국가의 미래 자산으로써 국격에 걸맞은 행사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에서, 충분히 숙의하고 공론화를 거쳐 설득력을 얻는다면 새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랏돈을 투입함에 있어 그 주인인 국민을 향한 부족함 없는 설명과 납득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점을 필히 곱씹어 봐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헛발질로 국가재정이 낭비될 경우 돌이킬 수 없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해결방안은 없을까. 국고를 운용함에 있어 허투루 쓸 경우 분명 책임을 지워야 하겠다.

참여연대에서는 과거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최순실 예산 등 국가기관의 부당한 정책으로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거나 공공기관의 재정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례가 있었다며,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공기업 등의 예산 허비와 재정 손실을 사전에 막거나 사후에 바로잡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손해의 최종적인 부담은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 실정에서, 참여연대는 국가의 위법부당한 재정 낭비를 막는 ‘국민소송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

현재 일반 국민이 국가기관의 위법한 재정 행위를 발견하고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경우, 상급 행정기관·국회 등 대의기관 또는 언론에 위법사항을 제보하거나, 국민감사청구제도를 활용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는 등의 방법이 있긴 하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해당 재정 행위의 효력을 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에 국회에는 ‘재정민주화를 위한 국민소송법안(박주민 의원 대표발의)’이 제출돼 있다. 이 제정안은 위법한 재정 행위로 인한 국가 예산의 낭비를 방지키 위해 국민이 직접 문제가 되는 재정 행위를 취소 또는 변경, 무효 등을 확인시키고 부당하게 집행된 예산을 국고에 환수하는 손해배상등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함이 골자다.

물론 대의민주주의에 부합하지 않고, 법원이 정치적·정책적 행위인 재정 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권력분립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법사위에 따르면 남소(濫訴) 및 행정 소극주의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소송제’는 정책결정자들의 잘못이나 권한 남용으로 인해 나라 곳간에 구멍이 생기는 것을 감시 및 제어할 수 있고 직접 그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야 할 것 없이 정권을 누가 잡던 간에 투명한 국고를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 장치라 할 수 있겠다. 국민소송제도 도입 논의는 20여 년간 좌절돼 왔다. 현 21대 국회에서도 이 제정안은 2년 가까이 계류중인 상황인데 지금부터라도 법안논의에 탄력을 붙여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일부 착각을 하고 있는데, 여든 야든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헌법에서 명시하듯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위임받은 권한을 순전히 제 것인 마냥 함부로 확대해 마음대로 휘두를 순 없다. “국민을 위해서”라는 상투적인 말을 내뱉을 게 아니라 진정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서 주어진 대의민주정치를 올바르게 실현하고 빈틈없이 나라살림을 챙기면 된다.

위세는 가당치 않으며 겸양해야 한다. 위법한 재정 행위를 시정하고, 이미 발생한 국가의 손해를 회복시킬 수 있는 권리는 국민에게 있다. 국민소송제가 그 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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