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CEO] 이재현 CJ 회장의 ‘컬처 경영’…제3의 도약 꿈꾼다

도기천 기자 2022.08.03 09:31:35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30년 세월
“20조 투자”… ‘문화 CJ’ 시즌2 선포
이재현표 역전드라마는 ‘현재진행형’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사내방송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4대 미래성장엔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CJ 제공)

‘원조 한류 전도사’로 불리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향후 5년간 ‘컬처(문화)’ 분야에 12조원 투자를 선언해 재계는 물론 문화예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그가 30여년전 ‘문화 CJ’를 기치로 내걸고 영화·드라마·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한류를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선언의 무게감이 크다. 이 회장의 이번 도전은 한류 첫발을 딛던 1990년대, 정권의 외압 및 병마와 싸워야 했던 10여년전 고난시기를 넘어 세 번째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삶을 들여다봤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CJ그룹의 정신과 철학은 컬처(Culture·문화), 플랫폼(Platform), 웰니스(Wellness·치유), 서스테이너빌러티(Sustainability·지속가능성)에 있다”

지난해 11월 이재현 회장은 임직원들 앞에서 CJ의 비전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가 전 임직원들 앞에 선 것은 2010년 ‘제2 도약 선언’ 이후 11년 만이다.

6개월 후인 지난 5월 이 회장은 비전을 구체화했다. 컬처, 플랫폼, 웰니스, 서스테이너빌러티를 4대 성장엔진으로 삼아 향후 5년간 2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한 것.

이중 컬처사업에 전체 투자금의 60%에 이르는 12조원을 쏟아붓는다. 컬처사업은 CJENM으로 대표되는 영화·드라마 등 콘텐츠사업과 CJ제일제당이 맡고 있는 식품사업이 양대축이다. ‘K-콘텐츠’ 확대를 위해 세계시장을 겨냥한 웰메이드 콘텐츠를 제작하고, ‘K-푸드’ 성장을 위해 미래형 식품 개발 및 생산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추진안을 보면, 각각의 분야들은 소비자의 일상(라이프 스타일)과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가령 컬처가 정신적 풍요를 뜻한다면 웰니스(치유)는 신체적 풍요를, 서스테이너빌리티(지속가능성)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통한 공존을 의미한다. 이 회장이 최근 중기 비전을 발표하면서 “웰니스와 서스테이너빌리티는 △모두가 잘 사는 것 △갑질 불가 △공정·상생이라는 CJ의 기본가치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를 보면, 30년전 시작된 ‘문화 CJ’는 오늘날 ‘공존’이라는 ESG 철학과 결합되면서 더 깊고 단단해진 느낌이다. 실제로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KCGS)이 실시한 2021년 ESG 평가에 따르면 CJ·CGV·ENM·대한통운·씨푸드·제일제당·프레시웨이 등 CJ그룹의 7개 상장사 가운데 6개사가 ESG A등급을 받았다.

 

CJ그룹의 4대 미래성장엔진(C.P.W.S) 개념도. 문화와 ESG를 접목한 것이 특징이다. (CJ 제공)

 


‘원조 한류 전도사’ 이재현…한국영화 마중물 역할



거슬러 올라가 보면, CJ의 문화사(史)는 그 어떤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CJ는 1993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독립하면서 기존 사업과 전혀 접점이 없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설정했다.

당시 이 회장은 주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미래 먹거리’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투자를 강행했다. 1995년 스티븐스필버그 감독 등이 설립한 미국의 영화제작·배급사 드림웍스에 3500억원을 투자해 아시아 배급권(일본 제외)을 따내며 ‘문화 CJ’를 세계에 선포했다.

이후 중국 등 해외에서 한류 열풍을 주도하고 후발 기업들의 길을 터주면서 명실공히 문화 1위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업계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이 회장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외환위기(IMF) 시기인 1998년 강변 테크노마트에 국내 첫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강변11’을 선보였는데, 영화관에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최초의 시도였다.

2003년에는 ‘세계 최초의 시네마 인 스타디움(Cinema in Stadium)’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서울월드컵경기장 내에 ‘상암CGV’를 설립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아이맥스·4DX 전용관, 고전명작들을 상영하는 아트하우스, 3-Way 돌비 서라운드 음향, 쾌적한 실내공기를 유지하는 삼림욕 향공조 시스템, 순번 발권기 등을 갖춰 큰 화제를 모았다.

2000년에는 영화배급투자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지금까지 400편이 넘는 한국영화를 배급·투자하며 세계시장에 우리 영화를 알렸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한국영화산업은 200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4년 영화 ‘실미도’로 첫 1000만 고지를 밟은 뒤,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 ‘국제시장’ ‘변호인’ 등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명량’(2014)은 한국영화사상 최다관객수인 1700만명을 기록했다.

특히 2019년 CJ가 투자한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개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최근에는 영화 ‘브로커’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감독상을 수상하며 활짝 웃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2020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의 4개 부문 수상에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콘텐츠·K푸드 양날개…‘컬처사업’ 총력전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 또한 한국영화산업 부흥에 크게 한몫했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책임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등 오랜 세월 국내외 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리며 영화판을 키워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작년 4월 개관한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의 초대 부의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제50회 국제 에미상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국제 에미상은 해외 우수 프로그램을 미국 시청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1973년 설립된 국제 TV 프로그램 시상식으로 캐나다 밴프 TV페스티벌, 모나코 몬테카를로 TV페스티벌과 함께 세계 3대 방송상으로 불린다.

이 상을 주관한 미국 국제TV예술과학아카데미(IATAS)는 이 부회장이 CJ가 1995년 미국 영화 제작사 드림웍스에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대중문화의 산업화와 글로벌화를 이끄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CJ는 영화산업의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선순환 생태계 조성에도 힘써 왔다. 스태프 4대보험 가입, 초과 근무수당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 2014년 영화 ‘국제시장’ 이후 모든 영화에 의무화 하고 있다.

이같은 CJ의 여러 도전은 국내 영화시장의 성장을 이끈 마중물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고비도 있었다. 영화사업 초기에는 막대한 적자에 허덕여야 했으며, 박근혜 정권 때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치적 풍파를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회장은 지병이 악화돼 부인 김희재씨의 신장을 이식받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의 최근 천문학적 컬처 사업 투자 선언은 이런 숱한 곡절과 성과를 거치며 나온 것이기에 더 의미가 깊다.

 

CJ그룹의 컬처 사업 전초기지로 불리는 CJ ENM의 서울 상암동 사옥. (사진=도기천 기자)

이 회장은 영화·미디어 뿐 아니라 한류의 또다른 한축인 ‘K-푸드’에도 역량을 쏟을 계획이다. 이미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는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브랜드가 명실공히 ‘K-푸드’ 위상을 세웠고 동남아, 유럽, 호주 등까지 점차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또한 CJ그룹은 비비고의 뒤를 이어 만두·치킨·김치·소스·즉석밥·김·롤을 ‘7대 글로벌 전략품목’으로 지정해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CNB뉴스에 “이재현 회장은 산업 기반이 미미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30년 가까이 영화·드라마 등 문화 사업에 꾸준히 투자해 국내 문화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하는 길을 열어 왔다”며 “이런 자신감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K-콘텐츠’, ‘K-푸드’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강행해 ‘K컬처’를 완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NB뉴스=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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