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문학㉕] 한화생명 ‘종이약국’, 지친 삶을 위로하다

손정호 기자 2021.11.16 09:38:25

11가지 처방전으로 ‘마음건강’ 치유
은평고객센터 1층 은은한 힐링공간
협업해온 불광서점 사라져 책임감↑

 

한화생명은 은평고객센터에 종이약국이라는 작은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상황별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11가지 '처방전' 형태로 책의 장르를 나눈 점이 특이하다. (사진=손정호 기자)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집콕’이 대세가 된 요즘, 문학은 메마른 삶에 위로가 된다. 이에 CNB가 ‘문학’을 ‘경영’에 담고 있는 기업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 편은 ‘종이약국’으로 소통하는 한화생명 이야기다. (CNB=손정호 기자)


 


한화생명은 ‘종이약국’이라는 작은 문학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5일 이곳을 찾아갔다. 서울시 지하철 6호선의 불광역 8번 출구로 나와 1분 정도 걸어가니 한화생명 은평빌딩(은평센터)이 나왔다. 이 빌딩 1층에 ‘종이약국’이 있다.

입구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체온을 체크하고 들어섰다. 책꽂이와 책상, 의자, 카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책꽂이에는 소설책과 시집, 수필집이 빼곡히 꽂혀 있다.

메인 책꽂이 위에 ‘종이약국’이라고 적힌 작은 검정색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 ‘당신에게 전하는 책 처방전’이라는 콘셉트 설명이 적혀 있다.

종이약국은 11가지의 처방전을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출발에 용기가 필요할 때’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요’ ‘우울하고 삶에 의욕이 없을 때’ ‘어떻게 사는 삶이 맞을까’ ‘이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을 때’ 등이다. 상황별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읽을 수 있다.

 

한화생명의 종이약국에서 소설책, 시집, 수필집 등 다양한 문학 책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손정호 기자)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책꽂이도 있다. 종이약국 중앙에 있는 책꽂이에는 다양한 소설책과 시집, 수필집 등이 꽂혀 있다.

그중에 김경주 시인의 시집 ‘고래와 수증기’를 꺼내서 의자에 앉았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새 떼를 쓸다’라는 시를 읽었다. ‘구름이 내려와 골짜기의 물을 마신다’는 구절을 작은 목소리로 되뇌니, 나를 치유하는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유리 진열장 안에 추천 양서도 있다. 진열장 안에 ‘가장 작지만 넓은 세계’라는 글자가 조명에 반짝인다. 소설책인 이희영의 ‘페인트’,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에세이인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 등이 있다. 진열장에 손을 집어넣고, 책 한 권을 꺼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종이약국에는 한화생명 은평센터의 창구별 대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도 설치되어 있다. 보험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가 대기 시간이 길면 잠시 시집이나 소설책을 읽으며 기다릴 수 있다.

입구에는 비디오아트 작품도 있다. 네모난 스크린에 파도나 논밭의 영상이 투영되는데, 이 작품을 바라보면서도 잠시 골치 아픈 세상일을 잊을 수 있었다.

좀 더 관심을 가지면 특별한 이벤트도 만날 수 있다.

한화생명보험, 한화손해보험, 한화자산운용, 한화저축은행, 한화투자증권 등 5개 금융 계열사는 ‘라이프 플러스(LIFE PLUS)’라는 문화 캠페인을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금융 5사는 라이프 플러스 캠페인의 일환으로 김영하 소설가가 진행하는 ‘수요 심야 토크’, 시를 나누는 ‘못말 낭독회’를 열기도 했다. ‘벚꽃 피크닉’ ‘스치듯 라이브’ 콘서트도 열었다.

 


서점이 사라지는 시대… ‘나홀로’ 문학공간



하지만 종이약국의 운명은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협업해오던 25년 역사의 불광문고가 팬데믹 사태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9월에 문을 닫았기 때문. 이 빌딩 지하 1층에 있던 불광문고는 정기적으로 종이약국의 신간 부문을 새롭게 채웠었다. 지역주민들이 은평구청에 불광문고를 지켜달라고 청원을 올리기도 했지만, 서점 주인 등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종이약국은 고객들이 쉬는 공간이다. 추천도서를 유리 진열장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비디오아트 작품으로 힐링을 주기도 한다. (사진=손정호 기자)

불광문고가 사라지면서 이제 종이약국은 인근 주민들의 유일한 독서 문화 공간이 됐다. 실제 기자가 방문했을 때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고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종이약국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한화생명의 책임감이 더 커져 보인다. 한화 은평빌딩 관계자는 CNB에 “불광문고와의 북 큐레이션으로 책들을 주기적으로 바꿔왔다. 최근 불광문고가 폐업하면서 북 큐레이션이 일시적으로 중단됐지만, 고객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주민들의 힐링 공간으로 계속 유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CNB=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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