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피리언슈머가 돌아온다①] 기아 ‘EV6’ 전시장에 사람들이 누운 까닭

선명규 기자 2021.09.13 09:27:01

장장 11개월간 여는 체험전시 가보니
차박족은 시트 접고 누워야 직성풀려
3D로 컬러·옵션·사양 ‘내맘대로’ 조합

 

기아는 내년 7월까지 서울시 성수동에 전기차 특화 복합문화공간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를 열어 고객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결합해 몰입감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사진=선명규 기자)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 물건 살 때 한번은 써봐야 지갑을 여는 ‘익스피리언슈머’(experience+consumer)다. 기대와 우려 속에 ‘위드 코로나’가 현실로 다가오자 움츠렸던 이 소비층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체험을 중시하는 ‘익스피리언슈머’는 한동안 비접촉 기조로 인해 소비활동에 제약이 컸다. 이제 봉인했던 욕구를 풀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도 이들의 구미에 맞는 경험 전달에 집중한 요소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특명은 무엇을 겪게 하고 구매의 확신을 갖게 할 것인가. CNB가 어떤 손맛을 전하는지 각양각색 킬링 포인트를 짚어본다. 1편은 차로 가능한 모든 체험을 앞세워 신규 고객을 흡수하려는 기아의 전략이다. (CNB=선명규 기자)
 

 


누워보더니 “사진과 다르네”



지난 2일 성동구에 위치한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 기아의 첫 전용 전기차 ‘EV6’의 체험공간인 이곳에서 2열 시트를 접고 잠시 누웠던 남성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사진보다 크네”

1인 ‘차박족’이라는 그는 “내가 몸집이 큰 탓도 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이나 유튜브 영상만 봤을 땐 좁은 듯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다”며 “막상 와서 살펴보니 내부가 꽤 넓어 하룻밤 나기에 충분하단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시청이나 관람만으론 부족한 부분의 보충제, 이 체험공간의 역할이다. 실내에서 운영돼 주행의 제약은 있지만 전달 방식을 다채롭게 짜서 이를 극복했다. 물론 여기에선 별도 시승 프로그램도 운영하지만 정차된 상태서 어떻게 기능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면 체감 만족도가 올라간다. 반드시 몰아봐야만 그 차의 전부를 알 수 있다는 고착화된 생각만 버리면.
 

곳곳에 친환경적 요소가 묻어 있다. 로비에는 EV6 생산에 사용된 폐플라스틱 섬유 원사 475다발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 작품이 설치돼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시작+청각 요소가 오감 자극



진열된 차량에 탑승해 앉거나 눕거나 갖춘 기능을 조작해보는 것은 기본값이다. 보다 깊게 알고 싶다면 운영시간 중 매시 10분과 30분에 시작하는 ‘스토리텔러 전시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좋다. 안내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볼거리에 얘깃거리를 입힌 것이 특징인데, 조명과 음향을 적절히 배합해 몰입감을 높인다.

가령 차에 탑재된 V2L(Vehicle To Load)을 소개할 때의 핵심은 빛이다. 벽면 콘센트에 코드를 꽂으면 어슴푸레한 섬광이 차에서 출발해 공기청정기 등과 같은 가전제품 여러 대에 닿아 작동시킨다. 차가 일종의 대용량 전기 배터리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빛에 소리가 더해지면 파급력이 커진다. GT 모델에 타면 제로백(자동차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시간) 3.5초의 폭발적인 급가속이 시각과 청각의 자극을 통해 전해진다. 질주음이 귓전을 울리고 바닥과 벽면의 섬광이 터널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구조를 연출한다. 따라서 운전석에 앉으면 실제 내달리는 착각 속으로 질주한다.

전시는 총 6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헬로 EV6 존 ▲EV6 라이프 존 ▲EV6 인사이드 존 ▲상담 존 ▲EV6 라운지 ▲EV6 가든이다.

곳곳에 예술적 요소가 반영됐다. 당장 입구에 들어서면 벽면과 천장을 뒤덮은 실의 가닥을 볼 수 있다. 그 출발점엔 475개의 실타래가 있다. 이 뭉치들에는 저마다 조명이 붙어 느릿하게 명멸한다. 여기에서 나온 실은 EV6 생산에 사용된 폐플라스틱 섬유 원사 475다발을 활용한 것이다. 이 차는 완충 시 최대 475km를 달릴 수 있다.

EV6 인사이드 존에는 뼈대의 일부만 남은 듯한 차량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와 협업해 EV6 기술력의 핵심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을 기반으로 만든 전시물이다. EV6 생산 후 남은 부품과 부자재를 활용했다. 이렇듯 전시물 대부분에는 친환경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방문객들이 3D 컨피규레이터를 통해 상세 사양과 옵션을 비교해보고 있다. (사진=선명규 기자)

 


컬러·옵션 등 1000가지 조합해 가상주행



전시장을 둘러본 관람객이 종국에 오래 머무는 곳은 ‘3D 컨피규레이터’이다. 화면을 터치해가며 상세 사양, 옵션 등을 선택해 약 1000가지 원하는 조합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모델, 상세 차종, 외장 컬러, 내장 컬러 등을 원하는 입맛대로 고르면 벽을 가득채운 대화면에 1:1 스케일로 뜬다. 시점을 달리해가며 가상주행을 할 수 있어 현실적이다.

전시장소 선정에 담긴 뒷얘기도 흥미롭다. 전시장과 전시물이 상반되는데 배경이 있다. ‘EV6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성수’는 지은 지 60년 넘은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한 복합공간이다.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이 공간을 채우는 차량은 혁신성을 뽐내 역설적이다. 보존과 변화가 공존하는 것이다.

기아 측은 “흘러간 시간을 간직한 공간 속에 미래 모빌리티가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온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옛 공간을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 시킨 배경에는 기아의 지속가능한 성장 의지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회사 측이 이번 체험 전시에 얼마나 공들였는지는 운영 기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길다. 지난달 27일 시작한 전시가 내년 7월까지 이어진다. 장장 11개월이다. 거리두기로 인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1시간마다 최대 30명까지 예약을 받는데, 가까운 주말은 대부분 매진이라 표 구하기가 쉽지 않다. 평일은 그나마 수월한 편이다.
 

EV6 생산 후 남은 부품과 부자재를 활용한 전시작품(사진=선명규 기자)

 


한밤중에도 손님 맞는 무인매장



경험 전달은 최근 자동차 업계의 주요한 열쇳말이다. 보다 자유로운 체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직원을 빼는 실험마저 하고 있다. 특정 시간대에 ‘무인매장’으로 운영해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차량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현대차는 서울 송파구 ‘현대자동차 송파대로 전시장(이하 송파대로지점)’을 평일은 저녁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주말은 오후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무인매장으로 운영한다. 직원 대신 서비스 로봇이 응대하기 때문에 이용 과정에서 거리낄 것이 없다.

기아는 지난달 차량 관람·시승·구매·브랜드 체험이 가능한 ‘강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면서 오후 8시~10시까지는 무인 매장으로 운영키로 했다.

기아 관계자는 CNB에 “언택트 시대에 고객들이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디지털을 통해 차량을 손쉽게 경험할 수 있도록 강서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관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디지털 기반의 고객 맞춤형 미래 거점을 지속 확대해 고객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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