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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텔링] 계륵 신세 된 전경련, 날개가 없다

거듭날까, 사라질까…시간은 누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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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도기천기자 |  2019.07.12 09:53:27

일본 재계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온 전경련이 정작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인 간담회’에서 배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경련이 과거 한일 민간경제교류를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지만, 이미 재계에 새판이 짜진 만큼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는 얘기까지 기업인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전경련이 다시 부활할 가능성은 없을까. (CNB=도기천 기자)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미국 전 하원의원단 초청 한미 통상 및 안보 현안 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갈등에 역할 기대 됐지만
文정부, 이번에도 ‘전경련 패싱’
기대감 사라지며 새연합론 부상
아직 이름 건재해 불편한 속내


“60년 역사를 가진 전경련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지금은 미운털이 박혔지만 풍부한 국제교류 경험과 연구활동은 다른 경제단체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처럼 재계를 대표하면서 정권과의 중간자 역할을 할 일은 없겠지만 ‘민간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한국재벌사>의 저자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게 전경련인 만큼, 지금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5대 그룹이 전경련에서 탈퇴해 대표성이 약해진 지 오래돼 전경련 패싱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한 대기업 임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로부터 외면 받는 처지에서 벗어날 것이란 관측이 유력했지만, 결국 ‘전경련 패싱’이 다시한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30대 대기업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 경제단체 4곳을 불러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는데, 전경련은 초청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날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GS그룹 총수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황각규 롯데 부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허창수 GS 회장, 김병원 농협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황창규 KT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구자열 LS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 부회장,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 장형진 영풍 회장, 김홍국 하림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보험 회장, 이원태 금호아시아나 부회장, 백복인 KT&G 사장, 안병덕 코오롱 부회장, 이우현 OCI 부회장, 김범수 카카오 의장, 정몽규 HDC 회장, 정몽진 KCC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등 내로라하는 경제계 인사들과 머리를 맞댔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경제부총리-주요그룹 CEO 간 핫라인 구축, 범정부 차원의 상호협력 등을 제안했고, 기업인들은 일본 현지기업들과 접촉하며 맨투맨식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30대기업 총수 및 CEO들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문 대통령 왼편에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등이 앉아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쉽다” vs “자업자득”

이런 상황을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아쉽다’, ‘너무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경련이 한일 민간 경제외교의 주요 채널 역할을 맡아 왔다는 점에서다.

전경련은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1983년부터 ‘한일재계회의’를 열고 있다. 양국 경제인의 협력 채널인 이 회의는 2007년 이후 양국 관계 악화로 중단되기도 했지만, 2014년 허창수 회장이 도쿄를 방문해 당시 게이단렌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을 만나 다시 부활시켰다. 두 단체는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도쿄에서 공동개최하기도 했다.

한일재계회의 외에도 2017년에는 한일 제3국 공동진출 세미나를 열었고, 지난해에는 일본 취업 세미나를 서울에서 개최했다.

특히 전경련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이 나온 이후, 한국경제가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경제외교를 더욱 강화했다. 지난 4월에는 한일 관계 진단 전문가 긴급 좌담회를 열었고,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경제교류 위축 가능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청와대 간담회가 열린 10일에도 긴급 세미나를 열어 일본의 수출규제 해결책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정부가 WTO 제소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일본통’으로 알려진 전경련을 배제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문 대통령이 좀 더 대승적 판단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 9월 남북정상회담 때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젊은 총수들. ‘소통’을 경영의 핵심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아버지 세대의 전경련은 불편한 존재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이재웅 쏘카 대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옛시절 가고 젊은총수들 전면에

하지만 재계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와 온도차가 있다. 전경련 시대를 대표했던 1·2세대 기업인들이 은퇴하거나 별세하면서, ‘SNS 세대’로 회자되는 3·4세 총수들로 이미 세대교체를 이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이 지난해 그룹의 사령탑으로 올라섰다. 효성도 비슷한 시기에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회장 체제로 전환됐다.

LG그룹은 작년에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면서 구광모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올랐고,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이 지난 4월 별세하면서 조원태 회장이 그룹을 승계했으며,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이 지난 3월 별세하면서 장남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40~50대의 젊은 나이이며, ‘소통’을 경영의 핵심수단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이 전경련을 꺼리는 이유는 전경련이 정치권과의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점점 정경유착의 뿌리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한때 경제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거대조직이었다. 초대 삼성 이병철 회장을 비롯, 현대 정주영, LG 구자경, SK 최종현, 대우 김우중 등 5대 그룹 총수들이 차례대로 회장을 맡았다. 근대화 시기에 전경련은 자유시장경제를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의 자금줄(일해재단) 역할을 해온 사실이 1988년 5공 청문회를 통해 드러났고,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의 대선 비자금 사건에 휘말려 총수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다. 1997년 15대 대선 때는 23개 대기업이 166억원의 정치자금을 낸 사실이 알려져 도마에 올랐다.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정치권과의 밀월은 계속돼 왔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선 후보 측에 823억원을 지원한 일명 ‘차떼기 사건’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다.

지난 정권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순실씨가 실소유주인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 53곳으로부터 774억원 걷어 지원했다. 이로 인해 기업인들이 줄줄이 검찰·특검의 조사를 받았고 국회에 불려 나갔으며 이중 일부는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2017년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을 적폐청산 1순위에 올렸고 전경련은 자연스레 도태됐다.

전경련은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를 열었지만 10대 그룹 회장이 모두 고사해, 결국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두 차례나 ‘셀프 연임’해야 했다.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일자리 창출, 남북경제협력 기반 조성 등 문재인 정부의 입맛에 맞는 개혁안을 내놨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현 정부 들어 허 회장이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청와대 공식행사에 초청된 것은 지난 3월 벨기에 국왕 국빈 만찬이 유일하다. 당시 전경련에 대한 정부의 자세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행사 다음날 청와대 측은 “전경련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전경련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2015년 7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재계 총수·CEO와의 간담회’ 직후 참석 기업인들과 대화하며 함께 웃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알박기’ 존재 됐나

이재용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으로 재계 구심점이 옮겨가고 있는 흐름도 전경련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5대그룹 총수들 간의 ‘승지원 회동’,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과의 ‘성북동 회동’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눈길을 끌었다. 1960년생인 최 회장은 이재용(51), 정의선(49), 구광모(41) 등 젊은 총수들에 비해 맏형격인데다, 뛰어난 친화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재계연합론이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정치 외풍에서 자유로운 철저한 기업실리 위주의 동맹을 의미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CNB에 “전경련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은 만큼, 당분간은 주요그룹 총수들이 핫라인을 통해 움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앞으로 자연스럽게 연합체가 결성되면 전경련은 글로벌 연구활동 기구로, 새로운 연합체는 기업이익을 대변하는 위치로 자리잡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마디로 지금은 전경련이 ‘계륵(鷄肋)’ 같은 존재라는 얘기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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