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단소송제’ 도입하라

이성호 기자 2020.11.19 10:28:48

지난 10월 26일 17개 소비자·시민사회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집단소송법 등 ‘소비자권익 3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사진 = 참여연대)

지난 2014년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카드 3사(KB국민카드·NH농협카드·롯데카드)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기억하는가.

이름·주민번호·전화번호·주소·결혼여부·직장명 등은 물론 결제계좌·연소득·연체금액 등 무려 1억 여건의 정보가 새나간 사상 최대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기록된다.

시간이 흘러 피해자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아닌 상징적인 의미의 위자료 명목으로 대략 10만원씩을 받았다. “어라? 나는 못 받았는데” 한다면 당연하다. 이유인 즉, 이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건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겨우 받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장장 5년 이상 긴 법정투쟁 끝에 지난해 대법원 확정판결로 마무리 됐다.

이처럼 기업의 잘못이나 반사회적·비윤리적인 행위 등으로 인해 대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 받기는 매우 어렵다. 방법이라고는 각 개인별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하는 게 여반장처럼 쉬운 게 아니다. 경제적·시간적으로 큰 부담이 따르는 등 현실적 제약과 무엇보다 피해를 본인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더군다나 거대 로펌을 앞세운 가해기업과 기나긴 법적 다툼에 시달려야 한다.

반면, 기업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소송을 당해 패소하더라도 승소한 피해자에게만 보상을 해주면 된다. 특히 항소를 통해 3심까지 장기간 끌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는 1석2조의 꽃놀이패다.

1심의 결과를 주시하던 잠재적 줄소송을 차단하고, 소멸시효(3년) 완성을 노릴 수 있는 것. 소멸시효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나 이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일정기간 계속된 경우, 그 권리가 소멸되는 것을 말한다.

즉, 현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끝나 카드 3사 유출 사태로 피해를 봤다며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소비자 권익보호가 미흡한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피해자들은 손실을 스스로 감내하며 포기해 버리고 만다. 비슷한 패턴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기업에서 판매한 상품·서비스에 대해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발생된다. 경영진은 고개를 숙이고 재발방지를 약속한다. 하지만 정작 피해구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없다. 보상이라고 하더라도 생색내기용으로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런 문제없이 영업활동을 지속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차량화재 사건, 라돈 침대 사건, 골관절염 유전자치료제 사건, DLF·라임 대규모 금융피해 등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내팽개쳐 있다.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에 ‘집단소송제’가 요구되는 이유다.

집단소송제는 일부 피해자가 가해자(기업)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그 손해를 인정받으면, 나머지 동일한 피해자들도 별도의 소송 없이 그 판결로 인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미국·영국·독일 등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있다.

현재 법무부는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제출돼 있다. 기업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기에 응당 책임을 묻고 합당한 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대규모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자발적 보상을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바로 잡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막아야 한다.

‘남소(濫訴)’ 우려는 접어둬라. 지난 2005년 증권관련 분야에서만 한정된 ‘증권집단소송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2019년까지 연 평균 1건 미만의 소송이 제기됐다. 전 분야에 걸친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소비자를 호갱으로 대하지 않고 혹시 모를 피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합리적이며 떳떳하게 처신한다면 소를 제기할 이유도 없다.

여기에 더해 고의나 중과실로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반사회적이고 무책임한 불법행위에 대해 실손해 이상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또한 확대·적용돼야 할 것이다. 영리활동 과정에서 위법행위를 통한 수익추구 유인을 이제는 억제해야 한다.

반기업 정서는 기업들 스스로 키우고 있진 않은 지 뒤돌아 봐야 한다. 소비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놔야 한다. 집단소송제 도입이 그 해답이다. 피해자들의 호소만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지난 17대 국회 때부터 미적미적 끌어온 ‘집단소송제’. 국정과제로 삼은 만큼 정부는 강력한 추진의지를 밀고 나가야 하며,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매조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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