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기업정책 핫이슈④] 뜨거운 감자 ‘다중대표소송제’…재계 거센 반발 “왜”

0.01% 지분으로 자회사 견제…주주권 형평성 논란

이성호 기자 2020.06.30 09:34:29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새 국회는 정쟁으로 얼룩진 지난 국회를 반면교사로 삼아 민생입법 완수를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이 176석의 거대여당으로 출범한 만큼, 잠자고 있던 대기업 규제 법안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에 CNB는 주요 기업정책을 분야별, 이슈별로 나눠 연재한다. 이번 주제는 21대 국회에서 재등판한 ‘다중대표소송제도’다. <편집자주>

 

 

법무부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카드를 들고 나와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수 지분으로 자회사 전횡 견제
주주권 강화돼 공익 측면 크지만
경영권침해·소송남발 등 부작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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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서 사장된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이 다시 추진된다.

법무부는 최근 회사 임원이 배임, 태만 등으로 자기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모회사(지주회사, 지배회사) 주주가 해당 임원을 상대로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포함해 입법예고 했다. 앞서 20대 국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여러 건의 ‘상법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흐지부지 된 바 있다.

정부(법무부)가 이번에 다시 개정안을 낸 이유는 현재 법령으로는 대주주가 자회사를 설립해 위법행위를 저지르더라도 모회사 주주가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대표소송제는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1이상(1%)에 해당하는 주식을 가진 주주가 회사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를 제기를 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모회사 주주의 자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에 대한 규정은 없다. 따라서 자회사의 피해가 모회사 주주에게 전이되는 것을 미리 견제하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모-자회사(모회사가 50%이상 지분 보유) 관계에서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소를 걸 때 필요한 지분은 비상장회사 1%, 상장회사 1만분의 1(0.01%)이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임원에게 소송을 거는 행위는 공익적 측면도 있다. 승소에 따른 이익이 모회사의 주주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자회사에 귀속된다는 점에서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없음에도 부정과 불법을 바로 잡기위해 소송행위가 이뤄지므로 공익소송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흐름에서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회사를 통한 일감몰아주기 등 대주주의 사익편취를 방지할 수 있고, 동시에 모회사 주주의 주주권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재계, 잠 못 이루는 밤

 

상법 개정안 관련 향후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이 예의주시되고 있다. (사잔=국회)

재계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다중대표소송 도입의 영향(2018년 11월 기준)’에 포함된 시뮬레이션 자료에 의하면, 90개 상장 지주사의 184억4000만원어치 주식(0.01%)으로 자회사 중 72.1%(408개)의 기업에 다중대표소송을 걸 수 있다.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20억어치 주식으로 자회사 14개에 소 제기를 할 수 있고, 롯데지주의 경우 5억8000만원 가량의 주식만 있으면 자회사 중 13개에 대표소송이 가능하다는 것. 물론 이는 2018년 11월 기준이라서 현재의 주가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처럼 적은 지분으로도 소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재계는 경영활동 침해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주주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소를 악용할 소지가 있으며, 경영권 침탈 또는 단기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투기자본이 기업압박 수단으로 남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경총·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에서는 자회사에 대한 경영 간섭을 야기해 독립적인 경영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고개를 젓고 있다.

여기에 더해 모회사 주주와 자회사 주주 간 불평등 문제도 있다. 자회사 주주가 자기 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려면 주식의 1% 이상을 보유해야 하지만,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적은 지분으로 소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CNB에 “다중대표소송제는 기업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법무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무조건 반대가 아니라 문제점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요구하고 이와 함께 대안까지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법무부는 개정안을 오는 7월 21일까지 입법예고 한 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향후 법안 논의 과정에서 176석의 거대여당으로 탈바꿈한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안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총수 일가의 전횡을 막고 투명경영 확립을 위해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 경제계는 야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야당 의원 수가 개정안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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