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귀한 역주행

선명규 기자 2020.06.25 09:37:34

지난 11일 부산 연제구 부산소방재난본부에서 열린 2020 상시 소방훈련 최우수팀 선발대회에서 소방대원이 화재진압 4인조법 경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달려간다. 위급하다. 차선도 넘나든다. 위험하다. 그렇다고 못 넘을 선은 없다. 무엇이 막아서건 그래도 달려야 한다. 속도가 붙나 싶더니 앞차의 속도가 느려진다. 창문 밖으로 담배 든 손이 나온다. 한참 어기대고선 느릿느릿 옆으로 비켜선다. 양보는 해주겠지만 심기가 불편하다는 뜻일 게다. 언짢고 원망스러워도 별 수 없다. 한시도 지체해선 안 되는 것이다.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에 달린 것은 크다. 누군가의 생명이 지고 사는 일이다.

집에서 직장까지 거리는 약 7km. 그 사이에 소방서와 119안전센터가 하나씩 있다. 촘촘하다. 같은 경로를 수년째 오가다 보니 소방관들의 출동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목격의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이틀 연속일 때도 있고 드문드문 볼 때도 있다. 안 보이면 반갑다.

출동 장면은 장관이다. 육중한 철문이 올라가면 찌를 듯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들이 쏟아져 나온다. 완벽한 대열과 어느 하나 허투루 않는 움직임은 고된 연습의 결과물일 것이다. 경이롭다.

출발 소리는 심박을 빠르게 만든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 가야한다고 속으로 되뇐다. 웬만하면 같은 마음인지 도로의 차들은 대체로 일제히 갈라진다. 훈련받은 것처럼 능숙하게 비켜선다.

그런데 간혹 본다. 양보가 고까운 모양이다. 뭐가 못마땅한지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천연히 차선을 지킨 채 정속주행을 하거나 조소하듯 창밖으로 담뱃불을 내보이며 어슬렁거리는 차도 있다. 왜 저러는 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소방관을 다룬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봤다. 고층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현관으로 뛰어나올 때 그 길을 거슬러 가던 소방관이 말한다. “몇 층 입니까? 그리고는 탈출하는 이들의 반대 방향으로 또박또박 걸어 들어간다. 건물이 시커먼 절망의 연기를 게워내고 있는데 아랑곳없다. 탈출의 문이 누군가에게는 진입의 창구가 되는 순간이다. 고귀한 역주행은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다.

한 손해보험사가 소방공무원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심신안정실’이란 곳을 119안전센터에 만들어주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물어봤다. “마땅한 휴게실도 없었어요.” 한 소방장이 말했다. 왜 이런 게 필요한가, 그래서 찾아봤다. 소방청 조사가 소방관을 짓누르는 책임의 무게를 숫자로 드러내고 있었다.

소방공무원 한 명이 소방안전을 위해 담당하는 국민은 1300여명. 최근 5년 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위험군 판정을 받은 소방공무원은 1만명을 넘었다. 업무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 수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소방공무원은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숫자만으론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 지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측정할 수 없다. 요령부득이다.

소방차가 출동하는 모습을 본 작가 김훈은 ‘불자동차’에 이렇게 썼다.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이 탄탄한 국가 기능에 경외심과 안정감이 들어야 마땅치 않겠나 싶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나 보다. 물색없는 어깃장을 놓아서 무엇을 얻겠는가. 심장에게 물어보라. 사이렌 소리에도 과연 무덤덤한가. 다급한 파동이 전해지지 않는가. 그래도 모르겠다면 병원부터 가보라. 마스크는 꼭 쓰고.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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