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용서할 기회’조차 법원의 판단?

회복적 사법…“국민정서 안 맞아” 비난 여론 지속

도기천 기자 2020.02.27 16:20:10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사진=연합뉴스)
 

“내가 용서를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요”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전도연이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에게 울부짖으면 외친 말이다. 영화 속 살해범은 이미 하나님께 회개해 용서 받았다며 누구보다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근 ‘회복적 사법’에 근거한 몇몇 판결을 보면 영화 속 신의 존재처럼 사법부가 피해자의 ‘용서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듯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는 ‘회복적 사법’ 개념을 적용한 판결로 사회의 파장을 일으켜왔다. 재판부는 최근 손자들 앞에서 아내를 살해한 치매 노인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는데, 회복적(치료적) 사법의 목적에서라고 설명했다. 음주 뺑소니 도주치상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은 피의자를 집행유예로 감형한 판결, 아내를 폭행해온 피의자에게 집행유예와 알코올 중독 치료를 명령한 판결 등이 회복적 사법의 일환이라며 내려진 판결들이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국내에 회복적 사법 개념을 시도하는 선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정 부장판사는 2012년 한 법률학술대회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화를 통해 변화(transformation)와 회복(restoration)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회복적 사법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 바 있다. 형사사법이 형사사법기관이 주도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도를 높임으로써 범죄에 대응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공동체 등이 주체적으로 재범을 막기 위해 참여해 나가는 것이 회복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피해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재판부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고 낮은 형량을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살해된 아내와 어머니가 재범을 막기 위한 대화에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며,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피해자가 피의자의 교화를 위한 대화에 참여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회복적 사법’이라는 미명 하에 피의자에게 내려진 턱없이 낮은 형량에 피해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할 뿐이다.

반면 재판부는 회복적 사법의 개념을 확대해 기업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재판부는 국정농단 뇌물사건으로 파기환송심을 받고 있는  삼성 측에 준법감시노력이 양형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곧바로 준법감시위원회를 꾸려 운영 중에 있다.

이에 대해 특검 측은 “준법감시위원회의 설치, 실효성 여부 등으로만 양형심리를 진행해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다는 예단을 드러낸 것”이라고 반발하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제출했다. 이처럼 우리 법에도 없는 미국의 양형제도를 가지고 재판을 하려한다는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는 회복적 사법 개념이 명확히 자리잡히기도 전에 상황에 맞춰 주관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집행 정지는 재판부가 법에 엄격히 의거하지 못한 판결을 내렸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보석이 즉각 취소되고 재구속 됐지만, 엿새 만에 다시 석방됐다. 재항고 기간(7일) 내 구속집행이 정지된다는 점을 재판부가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재항고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전 대통령은 당장의 구속집행을 면하게 됐지만, 앞서 이 재판부에서 보석이 취소됐던 피의자들은 이미 재항고 기간이 지나 항변이나 구제의 기회를 상실한 상황이다. 재판부는 앞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의 항소심에서 2년 6개월로 감형을 하면서도 보석을 취소한 바 있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 등 국내에 가장 이슈가 되는 거물들의 재판을 맡았다. 그만큼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지만 국민 정서와는 부합되지 않는 회복적 사법 개념으로 오히려 불신과 우려를 낳고 있는 모습이다.

용서와 치유는 피해자와 사회의 몫이다. 또한 사법정의는 재판장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과 판단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라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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