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워할 수 없는 터프가이, 종이 빨대

선명규 기자 2019.07.11 10:26:45

스타벅스는 지난해 종이 빨대를 도입해 일회용 빨대 사용량을 절반 가량 줄였다. (사진=선명규 기자)

아무리 해도 세상 적응 안되는 게 있다. 요즘 날 괴롭히는 건 스마트폰 지문인식이다. 한 번에 열리는 꼴을 못 봤다.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문질러가며 꼼꼼하게 등록해 놨는데 이제와 나몰라라다.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도 아니고 안면몰수다. 어쩔 수없이 패턴으로 풀기 일쑤다.

신기종을 사기 전엔 한껏 폼 잡고 싶었더랬다. 계산대 앞에서 ‘엄지척’ 한 방으로 잠금 해제부터 ‘페이’ 실행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런 전개. 하지만 문장을 바꿔가며 손가락 똑바로 대라는 경고만 방파제처럼 나온다. 뒤통수가 점점 따가워진다. 한 번 더 실패하면 한참 기다려야 재도전 기회를 준단다. 초조하다.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네 번째 틀렸을 때만큼이나 압박감이 든다. 결국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야 만다. 지문인식을 통한 잠금장치 해제는 나에게 도무지 풀리지 않는 숙제다.

닿아서 생기는 껄끄러운 일이 또 있다. 요즘 카페에서 주는 종이 빨대다. 입술에 닿는 느낌이 영 오묘하다. 혀에라도 스치면 터프한 감촉에 놀라 요리조리 도망 다니게 된다. 종합해보면 물에 젖은 두루마리 휴지를 무는 느낌이다. 들숨과 함께 심지를 타고 올라오는 저 까만 액체. 나는 대체 뭘 마시고 있는 건가.

그래도 미워할 수 없고 미워해선 안 되는 녀석이다. 거친 너의 등장으로 인해 사라져가는 것이 있으니 플라스틱이다.

업계 1위 스타벅스가 종이 빨대를 시범 도입한 건 지난해 9월. 두 달 뒤부터 전국 매장에서 본격 사용한 결과 일회용 빨대 사용량이 50% 가량 줄었다고 한다. 빨대가 필요 없는 컵 뚜껑(리드)을 함께 들인 영향도 있다. 어쨌든 짧은 시간에 반절이나 줄어든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한국이 2016년 세운 1등 국가 타이틀이 있다.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98.2㎏)이다. 이겼는데 진 것 같다. 포장용 플라스틱 사용량은 2위(64.12㎏)를 차지했다. 많이도 썼다. 주는 대로 받아서 쓰고 편해서 찾아서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세계를 재패했다.

플라스틱은 분해되는 데 수 백년이 걸린다고 한다. 오늘 쓰고 버린 플라스틱 빨대가 한 세기 뒤에도 어딘가에서 정정한 얼굴로 돌아다닐 거다. 나보다 오래 살 분인데 지금 감히 겸상할 수는 없다. 카페서든 식당에서든 그만 놓아드려야 한다.

생활에 변화가 찾아오면 허둥대고 적응 안 되고 미심쩍기 마련이다. 처음 종이 빨대를 만났을 땐 커피를 끊을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이 촉감은 나만의 것인가? 그래서 지식인을 찾았다. 당연한 반응이란다. 신경의 말단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입술이라 촉각에 민감하단다. 거친 입맛은 잠깐, 순간만 참으면 ‘플라스틱 장수시대’가 저물 것이라고 패륜적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아졌다. 까짓, 참지 뭐. 그래서 관대해지기로 했다. 여전히 내 손맛 기억 못하는 얘한테도. 나를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

(CNB=선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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