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LG·두산·한진…재벌총수들 ‘상속세의 그늘’

지분 물려받으려 지분 판다? ‘부 대물림’의 함정

도기천 기자 2019.06.12 09:02:02

재벌가 3,4세가 부담하는 막대한 상속세가 기업경영에 지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여당이 세재 개편에 나서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에서 ‘혁신성장’으로 기업정책 방향을 사실상 전환했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상속세 문제가 ‘우클릭’하고 있다. (CNB=도기천 기자)

 

상속세 문제에 직면한 재벌 총수들. (왼쪽부터)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각사,연합뉴스)

 

가업 승계에 막대한 세금 ‘논란’
3·4세로 바뀐 재계 ‘뜨거운 감자’
정부·여당, 세제개편 카드 만지작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1일 당정협의를 통해 10년 이상 된 중소·중견기업(연매출 3000억원 미만 기업)을 자녀 등에게 상속하면 최대 500억원의 세금을 깎아주고 있는 현행 가업상속지원세제의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상속인이 상속일로부터 10년 동안 지분, 자산, 업종, 고용 등을 유지하도록 한 사후관리 기간을 7년으로 단축하고 업종 변경 범위도 확대키로 했다. 다양화·세분화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산업환경에 맞게 제도를 현실화하자는 취지다.

이번 개편안이 비록 수혜대상을 중소·중견기업에 국한하고 있지만 일단 상속제도 자체를 손봤다는 점에서 재계는 고무된 분위기다.

특히 야권은 이번 참에 전경련·경총 등 경제단체가 주장해온 ‘대기업 할증과세 폐지’ 등을 밀어붙일 태세다. 할증세는 일반 상속세율에 더해 기업 오너 일가에게만 적용되는 일종의 ‘특별세’ 개념이다.

자유한국당 전략기획부총장 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추경호 의원은 11일 CNB에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세재개편안을 논의할 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가업상속공제 개편안과 함께 대기업 등 최대주주의 주식 상속에 적용하는 할증 과세 제도 폐지도 집중적으로 제기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추 의원은 상속세 세율구간 축소 및 세율 인하 등에 관한 법안을 이미 발의한 상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의 대물림 vs 가업 승계

수십년 간 계속돼온 상속세 제도가 유독 최근에 화두가 되고 있는 이유는 1,2세대 총수들이 물러나거나 별세하면서 여러 대기업에서 동시에 재산 상속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이 지난 4월 별세하면서 조원태 회장 등 유족들이 조양호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두산그룹은 박용곤 명예회장이 지난 3월 별세하면서 장남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으로의 지분 상속이 진행되고 있다. LG그룹에서는 작년에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면서 총수 자리에 오른 구광모 회장이 이미 상속세 일부를 납부한 상태다.

경영승계가 이뤄졌거나 진행 중인 기업들은 지분 증여가 관건이다.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이 지난해 그룹의 사령탑으로 올라섰으며, 효성도 비슷한 시기에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회장 체제로 전환됐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친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GS그룹은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오너가 4세인 허세홍 사장을 GS칼텍스 대표이사로, 3세인 허용수 사장을 GS에너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코오롱그룹은 23년 동안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이웅렬 회장이 퇴임하고, 이 회장의 장남인 이규호 상무가 최근 전무로 승진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중심으로 승계구도가 짜여지고 있다.

이처럼 상속·증여가 봇물을 이루면서 세금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는 것. 여기에는 기업경영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현행 상속세가 높다는 점이 배경이 되고 있다.

상속세는 재산 규모에 따라 세율이 달리 매겨지는데 통상 5억~10억원까지는 세금이 없거나 미미하다.

하지만 상속 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 최대세율인 50%를 적용받는다. 여기에다 최대주주 지분을 50% 미만 상속·증여할 때는 20%, 50% 이상 상속·증여할 때는 30% 할증된다. 이를 감안하면 최고세율은 65%까지 높아진다. 1000억을 상속받거나 증여받는다면 최대 650억원의 세금을 내야한단 얘기다.

이는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학계에 따르면 실제 상속세를 내는 비율인 실효세율이 일본, 독일, 미국 보다 우리나라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중소·중견기업 오너가 자녀 등에게 가업을 승계할 경우, 세 부담을 줄여주는 가업상속공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공제 신청 건수는 연평균 72.4건(최근 5년간 기준)에 그치고 있다.

 

재계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에서 ‘혁신성장’으로 기업정책 방향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상속세 완화를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월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대기업 총수 등 CEO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CNB 포토뱅크)
 

수천억대 상속세에 곡간 ‘흔들’

이처럼 높은 세율로 인해 기업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보유주식을 매각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경영권을 방어하기 힘든 상황마저 발생하고 있다.

한진그룹의 경우 고 조양호 회장이 한진칼(17.84%)을 비롯, 한진(6.87%), 대한항공(0.01%), 대한항공우(2.4%), 정석기업(20.64%) 등의 지분을 갖고 있는데 이를 다 합치면 상속세 총액이 무려 2600억원에 이른다.

한진가(家)는 막대한 세금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고민이다.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일부 주식을 처분할 수밖에 없지만 이는 경영권 유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대한항공이 조양호 회장에게 지급한 퇴직금 400억원을 비롯, 주식담보 대출, 보유 부동산 매각 등 다양한 수단이 동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LG 주식 8.8%에 대한 상속세 7155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연이자 1.8%를 적용해 여섯 차례 나눠서 내는 연부연납 방식으로 세금을 납부할 계획이다. 판토스 보유 지분(7.5%) 매각 대금 등으로 1차분(1536억원)을 냈으며, 주식담보대출로 나머지 납부 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가(家)도 지분 매각 방식으로 상속세를 마련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지난달 그룹 지주회사격인 ㈜두산의 지분 약 7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팔았다. 고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분에 대한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주요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한 바 있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폴 엘리엇 싱어 회장. (사진=연합뉴스)
 

경영프리미엄? 실질이득 따져야

이같은 막대한 세금은 그룹 지배구조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실제 한진그룹은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로부터 경영권을 위협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15.98%를 보유한 KCGI는 꾸준히 주식을 매입하며 오너일가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원태 회장을 총수로 선임한 한진칼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는가하면 지난 3월 열린 주총에서는 사외이사 선임, 대표이사 연임 등에 반대표를 던졌다. 한진가는 이런 상황에서도 상속세를 내려면 계열사 주식을 일부 처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기업들이 적대세력으로부터 공격받은 사례는 이 외에도 여럿 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의 자사주 매각을 금지해 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사사건건 합병을 방해했다. 최근에는 합병 당시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재판소에 84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엘리엇은 또 지난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에도 반발했다. 현대차그룹은 주총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개편안을 잠정 취소했다.

SK그룹은 2000년대 초 뉴질랜드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소버린은 자회사 크레스트증권을 통해 SK의 지분 15%를 사들여 외국계 자본 최초로 국내 대기업 최대주주가 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스위스의 승강기 제조회사 쉰들러와 지금까지도 소송을 벌이고 있다. 쉰들러는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며 지분을 35%까지 늘렸었다.

정세현 인하대 겸임교수(경영학)는 CNB에 “지분을 물려받기 위해 지분을 파는 웃지못할 일이 되풀이 되고 있는데, 이는 투기자본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기업마다 상황이 다른데도 상속세에 대해 동일하게 할증과세하는 건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가치에 따라 경영권 프리미엄이 다르게 평가받는데도 일괄 할증을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얘기다. 미국·영국 등은 이런 점을 감안해 세무당국이 사안별로 경영 상태를 심사해 실질 이득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CNB에 “기업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경영권 안정”이라며 “이미 수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에게 별도의 프리미엄 할증을 물리는 게 타당한 지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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