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만이 우리 경제의 미래일까?

손정호 기자 2019.04.11 10:56:00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생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처음으로 시행했다. 이로 인해 대항한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대표이사직을 상실하게 됐다. 그리고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한국 경제계에 또 하나의 슬픔으로 남았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금융투자업계를 대표하는 ‘큰 손’이다. 운용자금만 660조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포스코, 삼성물산, 현대건설, 신세계백화점,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미래에셋대우, 삼성증권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297개 기업에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 지분율은 5~10% 수준으로, 2대 주주 정도의 위치다. 국민연금 혼자서는 주총 안건의 가결 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분의2 이상으로 매우 높은 경우에도 영향을 주기 힘들지만, 이들의 지분율이 낮은 경우 다른 주주들이 힘을 모으면 안건 가결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구조다.

조 회장의 대표이사 연임 실패,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숙환에 의한 별세라는 이 부적절한 타이밍 앞에서 우리 경제가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조 회장이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상황이 보다 이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초월한 황제경영과 갑질, 각종 전횡, 이에 따른 수직적인 지배구조, 낮은 배당성향, 북한 리스트로 인한 불안전성 등을 의미한다. 선진국 시선에서 어떤 총수일가의 일탈은 광장히 후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선진국이라고 기업인들이 부정회계 등으로 구속되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BMW나 옥시가 우리나라에서 문제를 일으킨 것을 보면, 이런 선진국 기업도 완벽하지는 않다.

우리나라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거의 없다. 선진국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엄격한 승계원칙을 운용하는 곳도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상속세율이 낮다. 상속을 쉽게 할 수 있는 대신에, 소득세를 높게 해서 시민들에게 폭넓은 복지를 제공한다. 이런 구조를 통해 대기업 가족과 평범한 서민 사이에 불만이 거의 없어서 행복지수가 높다고 한다.

선진국도 국가의 크기에 따라서 경제와 사회를 운용하는 규칙들이 다르다. 하지만 보통 관찰되는 것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혼재해 있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경영권 방어를 도와주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국가 경제의 안전성을 고려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로 소액주주들의 주주권 행사 발언력이 높아지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갑질과 전횡을 일삼는 기업인이지, 주요 기업인의 실패나 죽음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시민사회와 대기업 경영인, 부자와 평범한 시민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가 우리의 최종 목표지점이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남북 분단상황으로 인해 다른 국가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우리나라에서,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시민사회, 학계가 다 같이 모여서 보다 진영논리를 떠난 경제발전 논리로 어떻게 하면 저성장의 늪을 딛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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