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신과 함께 - 인과 연’ 흥행이 개운하지 않은 이유 ② 남성취향 일색인 한국 영화판

'신과 함께' 원작이 남자 취향 이야기였나?…여배우들 설 자리 또 줄여

윤지원 기자 2018.08.14 08:29:29

지난 5일 대만 타이베이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신과 함께 - 인과 연' 레드카펫 행사에서 (왼쪽부터) 김용화 감독, 배우 김동욱, 마동석, 김향기, 하정우, 주지훈이 현지 팬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1일 개봉한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광복절 전후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 상영, 흥행 등의 과정에는 따끔한 질책을 받아야 할 요소들도 많다.

 

흥행 상위 한국 영화 주인공은 90% 이상이 남자

 

독과점 문제와 함께 지적하고 싶은 또 다른 문제는 한국 영화계의 ‘남자 이야기 강박’이다. 한국 기획 영화들이 남성 캐릭터 위주, 폭력과 범죄를 다루는 이야기 일색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문제다.

 

올해 흥행한 한국 영화들은 그나마 지난 몇 년에 비해 나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2018년에 개봉해 현재까지 연간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오른 영화들은 다음과 같다.

 

1위 ‘신과 함께 - 인과 연’ (상영중)

2위 ‘독전’

3위 ‘그것만이 내 세상’

4위 ‘마녀’

5위 ‘탐정: 리턴즈’

6위 ‘곤지암’

7위 ‘지금 만나러 갑니다’

8위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9위 ‘공작’ (상영중)

10위 ‘리틀 포레스트’

 

이중 여자가 단독 주인공인 영화는 ‘마녀’와 ‘리틀 포레스트’ 뿐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부부가 주인공인 영화고, 3명 이상 복수의 주인공에 여자가 포함된 영화는 ‘신과 함께’와 ‘곤지암’뿐이다.

 

‘독전’, ‘그것만이 내 세상’, ‘탐정: 리턴즈’,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 ‘공작’ 등이 여러 명의 남자 주인공들을 내세우고 있다. 순위권에 포함되지 못한 상업 영화 중에서도 ‘인랑’, ‘흥부: 글로 세상을 바꾼 자’, ‘골든슬럼버’, ‘머니백’ 등도 남자 주인공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최근 수년간 한국 기획 영화가 심각하게 남성 편향화되어 왔다는 것은 명백하다.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 10위까지인 ‘택시운전사’, ‘신과 함께 - 죄와 벌’, ‘공조’, ‘범죄도시’, ‘군함도’, ‘청년경찰’, ‘더 킹’, ‘꾼’, ‘강철비’, ‘남한산성’에서 주인공에 여자가 포함된 것은, 주요 배역 5명 중 여자가 1명인 ‘신과 함께 - 죄와 벌’뿐이다. 20위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 11위의 ‘아이 캔 스피크’, 17위의 ‘박열’, 19위의 ‘1987’만이 복수의 주인공에 여배우 1명씩이 포함됐을 뿐이다.

 

8일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 포스터에 등장한 배우 중 (뒷줄 왼쪽부터) 조진웅, 이성민, 주지훈은 올해 다른 개봉작에서도 주연으로 출연한 배우들이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칸의 여왕도 출연할 영화 없어

 

한국은 세계적인 국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여자 배우들을 다수 배출한 나라다. 하지만 그 주인공인 전도연, 문소리, 강수연, 김민희 같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하는 영화가 애초에 기획되지 않는다. 반면 지난주 개봉한 '공작'의 조진웅, 주지훈, 이성민이나 '인랑'과 '골든슬럼버'의 강동원 등 올해 주연작이 두세 편씩이나 되는 남자 배우들은 수두룩하다. 오죽하면 문소리는 이런 현실을 담은 영화를 직접 감독하기까지 했을까.

 

쌍천만 영화인 ‘신과 함께’ 시리즈도 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편인 ‘신과 함께 - 죄와 벌’은 주인공인 김자홍(차태현 분)의 어머니를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다하는 모성이라는 틀에 박힌 신파 캐릭터로 그리고, 캐릭터의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지금 흥행 중인 후편 ‘신과 함께 - 인과 연’에 대해서는 개봉 전에 다소 기대가 있었다. 1편에서부터 원작 웹툰의 2부 ‘이승 편’에 등장하는 노인과 손자, 그리고 그 집을 돌보는 성주신(마동석 분)의 등장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웹툰 ‘이승 편’은 고물을 줍는 노인이 홀로 어린 손자를 돌보며 곧 철거될 판자집에서 살아가는 얘기가 그려졌다. 이 가난하고 불쌍한 집에도 성주신(집을 관장하는 신), 조왕신(부엌을 관장하는 신), 측신(변소를 관장하는 신) 등의 가택신들이 살고 있었고, 노인의 수명이 다해 저승차사가 나타나자 혼자 남을 손자를 위해 신들이 저승의 법도를 어기고 차사와 대적하는 사건 등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손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자신들을 돕는 조왕신과 측신을 엄마나 누나를 대신하는 존재로 여기며 의지했고, 조왕신과 측신 등은 신의 본분을 어기면서까지 손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모습으로 큰 감동을 자아내는 데 일조했다.

 

조왕신은 가택신 중에서 가장 침착하게 큰틀에서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으로 그려졌고, 측신은 다소 불량하면서 개성 강한 성격을 지니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으로 그려져, 한국 영화의 여성 캐릭터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영화 ‘신과 함께 - 인과 연’은 웹툰의 ‘이승 편’ 부분을 축소하고, 대신 3부였던 ‘신화 편’에 나온 저승 삼차사의 인연이 얽힌 과거사를 비중 있게 다뤘다. 그 과정에서 조왕신과 측신이라는 캐릭터는 사라지고, 성주신만 남아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 겸 영화의 액션과 개그 담당을 맡게 됐다.

 

주요 등장인물들로 꾸민 '신과 함께 - 인과 연'의 포스터. 여자 주인공은 김향기 뿐이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원작에 있던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 어디로?

 

물론 ‘신과 함께’ 영화와 웹툰은 엄연히 다른 창작물로 봐야 하며, 원작 스토리의 어떤 요소를 어떻게 채택해 배치할지는 각색자의 고유 권한이다.

 

영화에서 삼차사의 과거사와 이들 사이에 얽힌 인연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부분은 ‘신과 함께’ 2부작의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도 하고, 덕분에 전편인 ‘죄와 벌’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각색 및 이야기의 완성도와, 작품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에서 거의 유일한 주요 여자 캐릭터는 삼차사의 막내인 ‘덕춘’(김향기 분)뿐인데, 그는 다른 두 차사와 달리 악령들과 싸우는 데 나서지 않고, 재판 중 위기를 맞았을 때에도 이를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없는 등 수동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또한 다소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고 낭만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나마 ‘인과 연’에서는 ‘죄와 벌’보다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발전적인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한 장면. 덕춘(김향기 분, 가운데)은 영화에서 유일한 주연급 여자 캐릭터지만 저승 삼차사 중 그의 역할은 수동적인 부분에 국한되어 있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신과 함께 - 인과 연'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는 저승 삼차사의 과거사 장면. 무장하고 말을 탄 고려 시대 군사들을 앞세운 남성 취향의 액션 장면들이 영화의 볼거리를 책임진다.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 밖에 ‘신과 함께 - 인과 연’에는 주목되는 여성 캐릭터가 전무하다. 강림(하정우 분)의 과거사에 등장하는 모친도 전쟁과 관련된 비극적 정서를 부추기는 판에 박힌 역할로 배치된 것에 불과하다. 전편 ‘신과 함께 - 죄와 벌’에서 인간 여성 캐릭터 대부분이 가장 혹은 아들의 죽음 앞에 무기력해져 눈물만 흘렸던 것에서 나아진 점이 없다.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저승 삼차사나 이승의 가택신들은 ‘신’이다. 이들은 인간과는 다른 목적으로 존재하며, 다른 사고 체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가택신들은 점차 함께 사는 인간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되고, 그것이 발전하여 급기야 인간의 삶에 개입하기로 결심했다. 이런 일은 현실에서 결코 볼 수 없는 판타지지만, 그들의 감정은 충분히 많은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이들의 비중이 줄어들거나 사라진 것에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이들이 사라진 자리를 비장한 고려 시대 액션 장면들이 채우는, 남성 취향 뚜렷한 창작물로 다시 태어났다. '싸나이 영화'는 한국 영화 팬들이 지겹게 봐 왔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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