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주 52시간 근무제’ 늪에 빠진 건설업계

노사 입장 ‘팽팽’…돌파구는 없나

손강훈 기자 2018.06.18 09:10:42

▲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건설사들이 고심에 빠졌다. 이들은 유예기간 적용, 해외사업장 제외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부는 입장은 단호하다. 세종시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줄에 의지한 채 일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 52시간 근무제를 두고 건설사들의 속이 타고 있다. 탄력근무제와 같은 대응 방안을 준비하면서도 유예기간 요구, 해외 근로자 제외 등의 목소리를 내는 중이다. 반면 노동계는 이들이 법 취지에 어긋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CNB가 양측의 입장을 들여다봤다. (CNB=손강훈 기자)

‘주52시간 근무’ 시행 두고
건설사 ‘경쟁력 악화’ 걱정
노동계 ‘책임 떠넘기나’ 비판

다음달부터 법정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어드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이에 상시근로자 300명이 넘는 건설사들은 근무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을 수가 없다.

이에 대형건설사들은 ‘탄력근무제’를 방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GS건설은 가장 먼저 이를 도입했다. 이들은 기본 근로시간을 본사 기준 주 40시간, 현장기준 주 48시간으로 정하고 연장업무 시간을 1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전 신청 및 승인 통해 유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관리시스템’을 구축, 지난 5일부터 적용했다.  

이를 통해 근무시간을 줄이면서도 현장 업무 필요성에 따라 출근시간대나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가령, 공기(工期)를 맞추기 위해 특정 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면 다른 주에 일하는 시간을 줄여 평균 52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현대건설, 삼성물산, 대우건설, 대림산업, 롯데건설, SK건설 등 다른 회사들도 TF(데스크포스) 구성, 시범운영 등을 통해 탄력적 근무제를 논의·검토해 왔으며 이르면 이달 말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의 눈치를 본 ‘울며 겨자먹기 식’ 대응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여전히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공사비용과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시공을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익에 타격이 된다.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건설 경기가 둔화된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가 생긴 것이다. 

특히 해외사업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이미 수주한 해외공사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으로 계약서보다 공사기간이 늘어나게 되면,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다.

더구나 국내 건설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 ‘인력관리를 통한 공사비 절감’과 ‘공사기일 준수’인데 개정안 시행으로 이 점이 사라지게 되면 다른 나라기업과 수주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CNB에 “사회간접자본(SOC) 감소, 부동산 규제정책 등으로 국내 사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 일괄 적용은 해외수주를 막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토로했다.

건설업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입장이다. 나아가 해외사업장에는 주 52시간 근무 적용을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 건설업계 요구를 '책임회피'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5일 열린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최저임금법 개악 폐지 결의대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임기응변식 탄력근무제로는 해결 안돼”

반면 주 52시간 근무제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노동계는 건설사의 이 같은 요구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경쟁력’이라는 회사의 생각에 비판적이다. 그동안 시공능력이나 품질향상을 등한시했던 고질적인 문제를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형사들이 도입을 예고한 탄력근무제는 실질적인 근무시간 단축 효과를 막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 양 노총은 2주 단위 탄력근무제를 활용하면 주 근로시간을 최대 76시간, 3개월 단위 탄력근무제를 활용하면 최대 80시간 법적 근무를 허용하기 때문에 주 52시간 근무 취지가 사라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2주나 3개월 기준으로 평균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지키면 되기 때문에 특정 주에는 70~80시간이 넘는 과도한 업무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건설현장에 탄력근무제를 도입하려면 발주처, 하도급사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현재 그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성급히 시행했다간 현장에 혼란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관계자는 CNB와의 통화에서 “해외에 진출하는 다른 업종들은 조용한데 유독 건설사만 해외사업장을 제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하지 말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편, 주 52시간 근무와 관련, 정부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열린 ‘아랍에미리트(UAE)·베트남 프로젝트 민관 전략회의’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행사에 참석한 건설사의 이 같은 요청에 “트렌드가 변한 만큼 근로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며 제도를 준수할 것을 당부했다.

(CNB=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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