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이명박 의혹’에 뿔난 오리온…‘루머 정국’ 부활했나

이례적인 강경·신속 대응, 최순실 학습효과?

도기천 기자 2018.03.20 10:32:25

▲오리온 본사 전경. (사진=오리온)

오리온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당선축하금을 전달했다는 MBC 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나서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때의 상황이 ‘데쟈뷰’ 되고 있다. 당시 여러 기업들의 실명이 회자되면서 온갖 의혹이 제기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부분이 부풀려졌거나 근거 없는 루머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이 입은 피해는 상당했다. 오리온이 재빠르게 대처에 나선 데는 이런 학습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CNB=도기천 기자)

오리온, ‘MB연루설’에 법적대응
재계, 이명박發 불똥 튈라 ‘긴장’
최순실 게이트 흑역사 ‘데쟈뷰’

지난 16일 MBC 뉴스데스크는 오리온 전직 임원의 주장을 인용해 “오리온그룹이 이화경 부회장의 지시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에 당선축하금과 세금무마용 등으로 1억원을 전달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에 오리온은 지난 17일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보도에 등장하는 오리온 전직 고위 임원은 조경민 전 사장으로, 2012년 횡령·배임 등 혐의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으며, 오리온 최고경영진에 대해 지속적 음해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리온 측은 “이 부회장은 MB와 일면식도 없고 당선축하금을 포함한 어떠한 명목으로도 금전을 요구 받은 적도, 금전을 전달한 사실도 전혀 없다”며 조 전 사장에 대해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계는 오리온이 이처럼 이례적으로 신속히 대응한 것은 과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의 경험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당시 구설수에 오른 기업들이 제대로 대처를 못해 피해를 본 사례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촛불 정국에서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에 편승해 진위가 확인되지 않는 각종 설이 일부 언론과 증권가 찌라시 등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었다.      

특히 특검이 일부 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재계 전반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저인망식’ 수사를 펴면서 의혹이 사실인양 둔갑하거나 전후 사정이 고려되지 않은 단편적 보도가 넘쳐났다. 그러자 재계에서는 “최순실과 옷깃만 스쳐도 죄가 된다”는 말까지 돌았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정공법’이 정답  

당시 10곳 넘는 대기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현회 LG 사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LIG넥스원 구본상 부회장이 95%이상 복역을 마친 상황이니, 8·15특별사면 대상 후보로 검토해 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세지를 보냈다가 구설에 올랐다. 구 부회장은 2016년 10월에 만기출소 했다. 단순한 청원 문자 한 통이 ‘부정청탁’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것이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셋째아들 동선 씨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와 함께 아시안게임에 승마선수로 출전해 단체전 금메달을 딴 사실이 알려져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한동안 ‘한화가 정유라의 말을 사줬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황창규 KT 회장은 청와대에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을 막아 달라’는 민원을 넣었는데 이는  SK텔레콤의 시장독과점을 막기 위한 것으로, 당시 시민단체들도 이런 우려를 제기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특검은 정부가 이들 기업의 합병을 불허했다는 점에서 황 사장과 청와대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동안 의심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순실씨 소유 재단에 추가로 기금을 내기로 약속(실제 기금출연은 없었음)했다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손경식 CJ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주한 자리에서 당시 수감 중이던 이재현 CJ 회장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얘기를 나눴다가 특검의 주목을 받았으며,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K스포츠재단에 시설 건립비를 내라는 청와대 압력을 받은 시점이 세무조사 기간 중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을 받았다.  

이처럼 여러 기업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검찰 조사 결과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 났다. 삼성과 롯데 외에는 기소된 기업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기업들은 큰 피해를 봤다. 이미지 손상으로 글로벌 신뢰도가 추락했으며, 일부는 노조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재벌=적폐’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면서 경제발전에 기여해온 긍정적인 측면은 묻혀버렸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기업총수들. 오른쪽부터 정몽구 현대차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구본무 LG 회장, 손경식 CJ 회장. (사진=연합뉴스)


오리온이 ‘MB 연루설’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데는 이런 과거사가 배경이 됐을 수 있다. 자칫 초기대응이 늦을 경우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의혹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오리온은 이번 논란의 진원지인 조경민 전 사장이 2012년 횡령·배임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조 전 사장은 비자금 조성 책임을 담철곤 회장·이화경 부회장에게 전가했는데, 이런 주장이 다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리온 사정에 밝은 재계 한 관계자는 CNB에 “조 전 사장이 이번에 오리온 총수일가를 겨냥한 의혹을 제기한 이유가 자신의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오리온과 조 전 사장 간에는 다수의 민·형사 소송이 진행 중인데, 여론의 주목을 받기위해 MB 얘기를 퍼트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이번 오리온 논란이 ‘MB판 재벌 게이트’의 신호탄이 아닌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장 핫한 뉴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인데, 이런 때에 가장 주목받기 쉬운 시나리오가 재벌과의 유착 의혹 아니겠냐”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때처럼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가 재계 전체를 뒤흔들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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