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정부·국회·LH공사 ‘엇박자’…누더기 된 ‘10년공공임대 개선’ 공약

주거복지로드맵 구멍 숭숭…온 나라가 ‘임대 메뚜기족’

도기천 기자 2017.12.13 09:15:45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세입자보호 대책을 촉구하는 세입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11일전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 후속 발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공주택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로드맵’이 시동을 걸었지만, 공공임대주택의 분양전환 기준이 유형별로 제각각이라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정치권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최대 임대주택 공급기관인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입주(예정)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CNB가 실상을 들여다봤다. (CNB=도기천 기자)

대통령 공약 ‘10년 공임 분양가 개선’ 
LH 반발로 난항…누더기 규정 될 판
내년 판교 분양전환, 정부 의지 시험대
 
“내집 마련의 꿈을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임대생활 메뚜기’가 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10년공공임대주택 거주자 손모(42)씨)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의 핵심은 공공주택 공급 확대다. 생애단계별·소득수준별로 실수요자에게 맞춤형으로 공적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금융지원을 확대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임대주택 유형별로 분양전환 금액과 기준이 달라 혼선이 일고 있다. 분양전환은 LH공사 소유의 주택에 일정기간 임대 형태로 거주한 뒤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우선 분양 받는 제도다. 

현재 분양전환의 유형은 5년공공임대와 10년공공임대, 신혼희망타운 등 3가지다.   

5년공공임대의 경우 5년간 월임대료를 내고 거주한 뒤, 건설원가와 감정가액의 평균치로 산정한 금액으로 분양받을 수 있다. 통상 주변시세의 70% 선에서 분양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10년 임대거주 뒤 분양받는 10년공공임대의 경우, ‘분양전환가격이 감정평가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고만 규정돼 있어 LH공사가 거의 시세대로 분양금액을 책정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신혼희망타운은 시세의 80% 수준에서 분양가가 정해질 예정이다. 입주자가 분양형과 임대형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 중 분양형 주택은 총 가격의 30%를 초기 부담하고 1%대 저리 모기지 대출과 연계해 20~30년간 원리금을 갚아나가는 구조다. 

이처럼 분양가격이 제각각이다보니 당첨자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5년공공임대와 신혼희망타운은 상당한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지만, 10년공공임대는 주택가격이 오르면 오른 만큼 분양가를 부담해야 하므로 10년 뒤가 염려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10년 공공임대주택의 분양전환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행되지 않고 있어 세입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에 명시된 관련 부분(빨간색 테두리).

LH “양보는 없다” 

이렇다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10년공공임대의 분양전환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고,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이를 올렸다. 국토부에 따르면 분양전환을 앞둔 10년공공임대주택은 전국적으로 14만7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주거복지로드맵’에는 관련 내용이 거의 포함되지 않아 세입자들의 원성이 커지고 있다. 국토부가 공개한 80페이지 분량의 ‘주거복지로드맵’ 자료집에는 ▲10년 공공임대 분양전환 시 임차인과의 협의절차 의무화 ▲분양전환을 받지 못한 임차인의 임대기간 연장 등 단 두 줄이 전부였다. 

애초 10년공공임대 세입자들은 분양가 개선이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했던 만큼 큰 기대를 걸었다. ‘전국10년공공임대주택연합회’를 결성해 청와대 민원, 서명운동 등을 전개해 왔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핵심 사안이 빠진 것이다.  

CNB 취재 결과, 국토부는 현재 후속대책으로 세입자와 임차인(LH공사 등)이 협의가 안 될 경우, 지자체에 분쟁조정을 일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분양전환을 할 수 없는 세대는 일정기간(4~5년) 임대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기존의 분양가 산정 기준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여 향후 사업자와 임차인 간 분쟁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LH공사 측은 한발 짝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분양가격은 감정평가금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법 규정에 따라 시세보다 낮게 분양해도 문제가 없지만, LH는 시세 수준에서 분양가를 정할 방침이다. 

LH공사 관계자는 CNB에 “분양가격을 낮춰달라는 민원인들의 요구가 많지만 국토부로부터 개선안을 통보받은 바가 없다”며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감정금액으로 분양가를 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0년공공임대 세입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13일 현재 민원인 수가 1만5000여명을 넘어섰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국민청원 1만5000명 돌파

당장 이슈로 부상한 곳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지역의 10년공공임대 단지다. 2009년 입주가 시작돼 내년에 수천세대가 순차적으로 분양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아파트 시세가 3배 가까이 상승해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가구는 거리에 나앉을 판이다.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13일 현재 민원인 수가 1만5000여명을 넘어섰다.   

이 지역 10년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오모(51)씨는 CNB에 “입주 때 가격의 3배나 되는 금액으로 분양 받으라니 기가 막힌다”며 “결국 우리가 LH공사 물량을 떠안는 역할을 하게 됐고, LH는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 국회 국토교통위 정동영 의원(국민의당)이 LH로부터 판교 공공주택 현황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판교 지역의 분양전환 시 LH가 가져가는 수익은 1조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당과 정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점도 세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국토부는 ‘협의 의무화’라는 방안 외에 내놓은 게 없지만 여권에서는 제도 개선을 구체화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민홍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년 임대주택 분양전환가격을 5년 임대주택과 같이 건설원가와 감정평가금액을 산술평균한 가액으로 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주택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동영 의원도 별도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국감때 “LH가 국민세금(주택도시기금)으로 혜택을 누리고, 시세차익까지 챙기는 것은 ‘공공임대’가 아니라 ‘투기임대’”라며 “공공택지는 매각을 금지하고, 부득이한 경우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으로 주택정책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전국LH중소형10년공공임대’ 인터넷 카페. 10년공공임대 분양전환 방식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주거 안정’ 보다 공기업이 먼저?

문제는 10년공공임대 만이 아니다. 정부가 기존 뉴스테이(기업형임대주택)를 폐지하고 도입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역시 8년 의무임대기간 이후 분양전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향후 사업자와 임차인 간 분쟁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연평균 4만호씩 향후 5년간 총 20만호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을 무주택자 및 저소득계층에게 우선 공급할 계획이다. 공공택지를 민간기업에 싸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자를 모으고 있는데, 현대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 현대산업개발, 포스코건설, 부영, 금호건설, 호반건설 등 국내 아파트분양사업 벌여온 대형건설사들이 대거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건설사들은 수익을 높이기 위해 비싼 가격에 분양전환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자칫 제2의 10년공공임대 사태가 우려된다. 

이처럼 논란이 커지고 있음에도 정부가 LH공사 등에 대해 뚜렷한 잣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공기업 경영정상화’라는 현안과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상반된 명제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LH는 부채 비율이 342%(133조)에 이르는 적자 공기업인데, 2022년까지 부채비율을 250% 아래로 감축하겠다는 목표 하에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주거복지로드맵을 통해 매년 10만 세대 이상의 공공주택을 보급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므로 LH의 재무개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부 입장에서는 LH의 수익악화를 불러올 분양가 인하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 건설공기업 관계자는 CNB에 “정부가 내놓은 (10년공공임대 분양전환 시) ‘임차인과 LH 간 협의 의무화’ 방안으로 인해 분양전환 때마다 당사자들 간에 큰 진통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구체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별도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LH만 압박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CNB=도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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