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건설사들 ‘짬짜미’는 왜 없어지지 않을까

‘솜방망이 처벌’ 또 도마 위…정부 안하나 못하나

손강훈 기자 2017.09.11 09:12:27

▲건설사 입찰담합 제재 강화에 대한 요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처벌 수위가 담합으로 인해 얻는 이익에 못 미치다보니 건설사들이 이를 겁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8월19일 열린 건설업계 공정경쟁과 자정실천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는 건설사 대표들 모습. (사진=대한건설협회)

대형건설사들의 통영·평택·삼척 LNG 저장탱크 입찰 담합 혐의가 재판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기소된 건설사 중 대부분은 4대강 사업 담합행위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어 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CNB=손강훈 기자)

건설사들 역대최대 ‘짬짜미’ 사실로
일부 기업은 4대강 입찰 담합 전력
가벼운 처벌에 사면까지…법효력 의문

3조5000억원대 입찰을 담합한 혐의(공정거래법·건설산업기본법 위반)로 기소된 경남기업·동아건설산업·대림산업·대우건설·삼부토건·SK건설·GS건설·한양·한화건설·현대건설 등 10개 건설사가 지난 5일 열린 첫공판에서 불법행위를 인정했다.

이들은 2005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한국가스공사가 발주한 LNG저장탱크공사 입찰 12건에 참여하면서 사전에 순번을 정해 골고루 수주를 받는 방법을 이용했다. 차례가 아닌 건설사들은 기존 합의된 가격보다 더 높은 금액의 입찰 내역서를 제출해 들러리 역할을 했다. 

이번 짬짜미는 최저가 낙찰제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건설사들에게 역대 두 번째로 높은 35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더구나 대림산업·대우건설·SK건설·GS건설·현대건설은 지난 2012년과 2014년 4대강 사업 관련 공사 담합 행위가 적발돼 처벌을 받은 회사였다.

이처럼 대규모 입찰담합이 근절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국회는 지난 3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통과, 제재 강화에 나섰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삼진아웃제’ 기준을 3년에서 9년으로 늘린 것. 개정 전에는 3년 이내 3번의 입찰담합이 적발돼 과징금 처분을 받으면 건설업 등록이 취소됐지만, 지금은 기간을 ‘9년 이내’로 해서 삼진아웃제에 적용될 수 있는 확률을 높였다.

또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인 지난 6월 입찰담합 등 비리를 저지르는 건설사에 ‘공공공사 입찰 참여 제한·삼진아웃제 적용’과 같은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동안 건설업계는 담합은 보통 개인의 일탈적 행위로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회사가 업계에서 퇴출당하는 건 과하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하지만 이번 공판으로 인해 이런 주장은 공감을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회사의 경우 LNG저장탱크부터 4대강·호남고속철 공사 담합에 관여한 임직원들을 승진시키는 등 사실상 담합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 건설사 관계자는 CNB에 “LNG저장탱크 담합의 경우는 건설사들의 자정 결의 전 일이다”며 “자정 결의 이후에는 회사 차원에서 담합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양형수준을 올리는 법 개정과 삼진아웃제 강화 등으로 건설사가 담합 시도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남의 한 공사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1조원대 담합에 벌금은 5천만원

시민단체들은 건설업계가 당장의 여론 악화에만 신경 쓸 뿐, 담합행위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찾을 수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지난 2015년 광복절 특별 사면을 통해 4대강 입찰 담합으로 받은 제재가 사라졌다. 당시 이들은 여론을 의식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총 2000억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을 내기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50억원 정도를 모으는데 그쳤다.

이들은 해외사업 부진, 정부의 규제 대책으로 인한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영이 어려워 기금 조성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를 대고 있지만, 올해 상반기 건설사들의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고 있는 점도 담합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 95조 제1호에 따르면,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정한 가격 결정을 방해할 목적으로 입찰자가 서로 공모하여 미리 조작한 가격으로 입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보통 법원이 담합 건설사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 형량은 벌금 7500만원으로 알려졌다. 실제 4대강 담합의 경우 건설사들이 대법원으로부터 선고 받은 벌금은 5000만원에서 7500만원이었다. 이들이 담합으로 얻은 부당이익은 1조6000억원 수준이다. 사면까지 받아 입찰 제한 등의 규제가 없어지면서, 결론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질렀어도 엄청난 이익을 본 셈이 됐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건설사들이 제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만큼 실질적 부담을 느낄 수 있도록 법개정을 통해 양형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삼진아웃제도 적용기간을 없애 ‘음주운전 삼진아웃제’처럼 담합이 3회 적발되면 무조건 퇴출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입찰담합이 반복된다는 것은 결국 제재 효과가 없다는 얘기”라며 “건설사가 무서워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CNB=손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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