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지 이틀 만에 또다시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이라는 ‘북풍’(北風)이 불어 닥쳐 상황 전개에 따라 대선판에 크게 영향을 끼칠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여야 대선레이스 초반 변수로 떠올랐다.
역대 대선에서 ‘안보’는 남북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각 주자의 안보관(觀)과 북한에 대한 태도는 대통령감으로서의 주요 평가지표였기 때문에 그에 따라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는 등 거의 상수(常數)나 다름없었다는 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피살 사건이 여야 대선주자들의 ‘안보 인식’을 본격 검증하는 쪽으로 대선판의 흐름을 유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명명된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사실상의 조기 대선국면은 일종의 ‘블랙홀’ 정국의 여파가 지속하는 흐름 속에서 다른 쟁점이 부각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별다른 ‘대형 이슈’ 없이 진행돼 왔다.
예를 들어 여느 때 같았으면 정국을 집어삼켰을 개헌 논란이 별 관심을 끌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이며, 특히 지지율이 급상승하며 집중 견제의 대상이 된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연정’ 발언 논란 역시, 정치적 휘발성을 지닌 이슈임에도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김정남이 이미 오래전부터 김정은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 국외를 전전하는 초라한 신세가 됐고, 그리고 김정은의 잇단 ‘피의 숙청’으로 김정남이 북한 내부와의 연결선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피살됐다는 점에서 우리 정국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이번 사태가 대선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차기 대권을 거머쥘 공산이 커지고 있는 현 대선판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이번 사태가 안보이슈로 점화돼 장기화한다면 사실상 중량감 있는 대선후보가 없는 범여권이 반전을 시도하는 데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등 보수계열의 범여권 정당들이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방점을 두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강력히 대처하라고 주문하는 등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띄우고 있는 것은 이런 판단에서다.
특히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드 2~3개 포대를 국방예산으로 도입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다”고 말하는 등 범여권 주자들은 이 같은 안보국면을 고리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조속 배치를 촉구하면서 정국의 초점을 전환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정부 공식 발표가 안 나온 상황에서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며 “일단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며 정부 입장을 지켜보겠다”고 말하는 등 야권 주자들은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긴장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특히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 측은 “김정남의 사망 경위와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상황에서 입장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전 선거에서도 많은 변수가 있었지만, 우리 국민은 흔들리지 않고 소신대로 판단해왔다”고 말했으며, 이재명 성남시장 측도 “공식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 지금 가뜩이나 정치적으로 불안한 상황인데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