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텔링] 소비자 옥죄는 금융사들, ‘윈윈 카드’는 없나

일부 카드·보험사, 너무 다른 ‘겉과 속’

이성호 기자 2016.08.22 10:47:43

▲2014년 1월 20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사진 오른쪽부터)심재오 당시 KB국민카드 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이 3사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부 카드·보험사들의 겉 다르고 속 다른 행태가 재조명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2014년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카드 3사(KB국민카드, NH농협카드, 롯데카드)의 개인정보 유출사건과 관련해 카드사들은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고 벌금형도 받았지만 모두 항소한 상태다. 일부 손해보험사는 청구된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고객을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CNB=이성호 기자)

개인정보 유출 카드3사 ‘항소’
소멸시효 될 때까지 ‘버티기’ 
자살보험금 지급 판결에도 미적

소비자는 ‘봉’ 이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상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터트린 카드사들의 대처가 그렇다.   

지난 2014년 카드3사의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세상에 알려져 충격을 줬다. 당시 해당 카드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사실상 실질적인 보상대책은 전무했다. 

이에 피해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 승소한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올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위자료 10만원씩 배상하라는 선고 이후 3월·6월에도 소비자 승소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들 카드사에 대해 벌금(국민카드·농협 1500만원, 롯데카드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카드사로부터 위자료를 받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는 없고 카드사들도 벌금을 내지 않았다. 해당 카드사들이 항소를 했기 때문.

금융권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억울해서 항소를 했다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손해배상건에 대해 10만원씩 지급을 하게 되면 그동안 관망하던 소비자들도 대거 소송에 참여, 질 경우 지급해야 할 배상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1심 형사재판 결과(벌금)를 그대로 수용하면 아무래도 그 영향이 민사소송에도 미치기 때문에 항소를 택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 소멸시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시간끌기인데,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를 인지한 날부터 3년 이내라야 효력을 발휘한다. 3년을 넘게 되는 내년 1월 7일 이후에는 청구권 효력이 상실(소멸)된다. 그날부터는 손배소를 제기할 수 없다.

피해를 입은 일부 소비자가 가해자인 기업 등을 상대로 승소를 하면 같은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은 별도의 소송 없이도 앞선 판결의 효력(기판력)으로 인해 모두 구제 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가 우리나라에는 완전히 도입되지 않은 상태다. 현행 법체계상 피해보상을 받으려면 개개인이 손배소를 제기해야 한다.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다. 피해 또한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에 부담이 크다. 이번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건의 경우 배상액이 적기도 해 관망하는 피해자들이 대다수다.  

기업 입장에서는 최종 재판결과에 앞서 소송인(원고)을 줄일수록 좋다. 3심인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가는 이유이기도 한데 지리한 시일이 흘러 참여한 소송인들이 중도 포기하거나 신규 소송을 차단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이를 지켜보던 피해자들은 청구권이 없어져 소송을 걸 수 없게 됨에 따라 일거양득인 셈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이하 금소연) 금융국장은 22일 CNB에 “카드사들이 정보수집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유출했음에도 경영상 데미지(손실)가 없고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개인정보유출 피해자들에게 무조건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식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카드3사 관련 공동소송에 금소연에서만 1만2000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소멸시효가 도래한 만큼 원고인을 새로 모집해 9월경 추가 소송에 나설 예정”이라며 “소송 참여자들은 보상 보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함께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5년 보험금청구건 대비 소송제기비율. (자료=손해보험협회 공시, 금소연)


‘툭하면 소송’ 소비자 압박 

일부 보험사들의 ‘툭하면 소송’ 행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열성적으로 보험 상품을 팔 때와는 달리 막상 청구된 보험금을 줄 때는 인색한 모양새다. 금소연이 최근 손해보험협회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금청구 1만건 당 소송제기비율은 롯데손해보험이 6.87건으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더케이손해 5.13건, AXA손해 4.84건 순이었다.

정식 소송 외 소액재판(2000만원 이하 민사조정) 제기 건수는 흥국화재가 1만건 당 4.07건으로 1위에 올랐다. 전체 손보사들이 소송을 걸어놓고 ‘소외 합의’한 후 소를 취하하는 비율은 30.7%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송이던 민사조정(소액재판)이던 소장이 날아오면 보험 계약자는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먼저 소송을 걸어놓고 소를 취하하는 것은 회사 측에서 보험금 삭감 등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태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대법원에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음에도 버티고 있는 보험사들도 있다. 생명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이전 판매한 상품의 재해특약 약관상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비자들과 소송을 벌인 끝에 지난 5월 13일 대법원 판결에서 최종 패소했다.

가입 당시 약관에는 보험 가입 후 2년이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약관은 단순 기재 실수고, ‘자살은 재해가 아니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해왔다.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회사별 자살보험금 지급현황'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후 대부분 생보사들은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삼성·교보·알리안츠·동부·한화·KDB·현대라이프생명 등 나머지 7개 생보사는 줘야할 보험금 1515억원 가운데 13.5%에 불과한 204억원 만을 지급했다.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법원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다. 

금소연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는 소송을 남발하는 보험사들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실시, 약관을 자기들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 철저한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NB=이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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