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목사’ 박형규 목사 별세…민주화 운동의 ‘큰 어른’

文 “민주주의 거꾸로 가고 있다”…손학규 “5일장 치러지는 동안 빈소 지킬 것”

심원섭 기자 2016.08.19 13:00:20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9일 오전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 고 박형규 목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명복을 빌며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 민주화운동계의 '큰어른'이자 군사정권 시절에 숱한 옥고를 치르면서도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길 위의 목사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던 박형규 목사가 18일 오후 530분 자택에서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0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923년 경남 마산 출생인 박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해방의 길목에서><해방을 향한 순례><파수꾼의 함성><행동하는 신학 실천하는 신앙인><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등의 저서를 남기기도 했으며, 특히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지난 2010년 만해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9일 박 목사의 빈소를 찾아 이렇게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을 하신 거목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고 계시는데,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있어서 정말 안타깝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문 전 대표는 빈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형규 목사님은 재야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어른이시고, 박 목사님이 NCC 인권위원장을 할 때 제가 부산에서 NCC 인권위원을 했다박형규 목사와의 인연을 전하기도 했다.

 

또한 강진에서 칩거하다 최근 정계복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박목사를 자신의 결혼식 주례를 부탁할 정도로 평생을 멘토로 삼아왔던 만큼 부음을 접하자마자 강진에서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침통한 표정으로 분향을 마친 손 전 대표는 유족들의 손을 굳게 잡고 고인의 명복을 빌은 뒤 기자들과 만나 제가 군을 제대하고 복학하고 찾아간 서울제일교회에서, 박 목사님은 반유신운동의 선봉 역할을 하고 계셨다"” 떠올렸으며, 아울러 고인이 주례를 서주고 자신에게 목회자의 길을 권했던 일이나, 기독교 싱크탱크의 원장을 맡으라고 권유했던 일 등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리고 손 전 상임고문은 "제 청년기 이후의 삶을 결정해주신 분"이라며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셨고 기독교를 민주화운동에 선봉에 서게 한 선봉장"이라고 말했으며, 동시에 손 전 상임고문은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내기도 했다.

 

손 전 고문은 우리 사회에 어른이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지금은 나라가 총체적 위기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국론이 분열돼 한반도가 새로운 분쟁의 중심지 되지 않을까 염려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손 전 고문은 우물에 빠진 돼지같은 형국에서 탈출해야 한다면서 우리 국민은 위대한 에너지와 정신을 가진 국민이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데 저도 역할을 하고자 한다라며 정계복귀 이후의 각오를 넌지시 내비치면서 5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빈소를 지킬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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