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임대아파트 임차인보호법 국회서 ‘쿨쿨’

서민 20만명 내몰릴판…한나라 ‘모르쇠’ 여전

김기중 기자 2006.11.28 15:58:29

“보증금 전액을 한 푼도 못 받아 재산상 손실과 심각한 주거권 침해가 발생했다. 국민은행에서는 경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갔다”(경남양산 그린장백아파트)

“기금 이자를 장기 연체한 뒤 입주민에게 수시로 부도내겠다고 협박하며 턱없이 높은 분양가를 제시했다”(해남 백두임대아파트)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 지어진 공공임대아파트가 오히려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전국부도임대아파트 공동대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현재 부도가 난 공공임대아파트는 2006년 7월 기준 총 7만 2,699세대. 세대 당 가족 수를 3명으로만 잡아도 무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증금을 떼인 채 올 겨울 거리로 나앉을 판이다.

이러한 문제는 공공임대아파트가 부도가 날 경우, 국민주택기금의 수탁금융기관인 국민은행이 근저당으로 설정한 임대아파트를 경매로 넣어버리면서 발생한다. 현행법은 국민주택기금을 빌려준 국민은행이 임차인(임대아파트 입주민)의 보증금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부도임대아파트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국민은행이 영세 임대 사업자가 사업서만 제출하면 허술한 심사를 하고 국민주택기금을 빌려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사업자는 기금을 빌려 공공임대아파트를 짓고, 50개월에서 70개월까지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는다는 것.

그러다 부도가 나면 국민주택기금 1순위인 국민은행은 기금을 빌려간 임대사업자는 놔두고 공공임대아파트를 경매에 넣어버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입주민은 보증금을 국민은행에 빼앗긴다. 이에 반해 사업자는 수백에서 수천 억 원에 달하는 국민주택기금을 갚지 않는 대신 파산신고를 내면 끝이다.

그러다보니 “3억 원의 사업자금만 있으면 국민은행에서 돈 왕창 빌리고, 아파트 지은 후 입주민 들어오면 원금·이자·보증금 다 떼어서 숨겨놓고 파산신고하면 모든 게 끝”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고의부도’를 운운하면서 입주민을 협박해 높은 분양가를 제시하는 사업자도 빈번하다.


■ 여·야 법안 3개 발의, 국회 통과 못해 ‘끙끙’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 차원에서 임차인의 보증금을 보장해 주는 법안은 없다. 분양전환, 경락(낙찰대금), 퇴거 시 대출 우대, 우선매수권 제도 등이 있긴 하지만 일부 혹은 우선권을 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부도가 나서 아파트가 경매에 들어가면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받지 못한 채 나가야만 한다.

공대위가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특별법을 제정해 임차인 보증금을 전액 보장하고, 고의부도를 내고 도망가버리는 사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는 것. 아울러 기금을 대출해 줄 때 허술하게 심사하고, 이후 몇 십 개월 이자를 못 받는데도 가만 놔두다가 경매에 의지해 기금을 회수하려는 국민은행에 감사를 실시하자는 것.

또한, 기금수탁기관을 국민은행 한 곳으로 하지 말고 공기업으로 위탁이전하거나 10개 이상 민간은행으로 분산시켜 직접 위탁 운영할 것을 원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내용을 담은 법안은 서갑원 열린우리당 의원이 ‘부도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으며, 이영순 민주노동당 의원도 ‘부도 공공임대주택 임차인 구제를 위한 특별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 등 이유를 들어 법사위를 마비시켜 놓은 상황이라 법은 그대로 잠자고 있다. 심지어 김석준 한나라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부도 공공임대주택의 임차인 주거안정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지만 한나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공대위는 이에 대해 28일 국회를 찾아 “이번 정기국회 내에 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김정태 공대위 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경매 과정에서 임차인의 보증금과 이자마저도 경매 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 임차인만 손해를 보고 있는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며 조속한 법 통과를 주장했다.

법안을 발의했던 서갑원 의원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보증금을 다 떼이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며 “특별법이 통과해야 고통받는 사람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으며, 한나라당이 계속해서 법안 통과를 미룰 경우,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입주민들은 당장 이번 겨울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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